"눈 떠보니 내가 인현왕후?"...'회빙환' 열풍, 문학계에도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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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전 장씨의 저주로 죽었다가 살아난 폐비 민씨.
장르 불문의 단편소설을 모은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의 위픽 시리즈 '인현왕후의 회빙환을 위하여'의 시작이다.
회귀, 빙의, 환생이라는 웹소설의 대표 문법 '회빙환'을 전면에 내세웠다.
"회빙환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며 여러 매체를 통해 '다시 살기'라는 아이디어가 소비되는 요즘, 내가 아닌 내가 되는 일을 문학적 언어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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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에서도 단행본·문예지 등서 등장
'사이다' 아닌 욕망·고발의 새로운 서사
중전 장씨의 저주로 죽었다가 살아난 폐비 민씨. 인현왕후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그의 몸에 ‘사정옥’이라는 이름의 명나라 여인이 빙의한다. 장르 불문의 단편소설을 모은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의 위픽 시리즈 ‘인현왕후의 회빙환을 위하여’의 시작이다. 회귀, 빙의, 환생이라는 웹소설의 대표 문법 ‘회빙환’을 전면에 내세웠다. 웹소설의 경계를 넘어 소설, 문예지, 학술논문까지 뻗어 나온 회빙환의 활약이다.
“회빙환,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
“웹소설 문법에 익숙한 ‘요즘 독자님’들이 재밌게 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인현왕후의 회빙환을 위하여’를 쓴 현찬양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의 작품에서 인현왕후의 몸에 깨어난 여성 사씨는 낯선 나라와 처지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로환소설’의 존재를 접한다. 사모할 '로(嫪)'에 돌아올 '환(還)'을 쓰는 로환소설은 현실 속 로맨스 판타지(로판)와 비슷한 장르로, “인생의 굴곡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는 여주인공이 다시금 사랑에 빠져서 행복해지는 이야기”다. 김소연 위즈덤하우스 스토리독자팀장은 “위픽은 장르의 경계를 허문다는 콘셉트여서 회빙환은 반가운 주제였다”고 귀띔했다.
출판사 은행나무가 내는 문예지 Axt(악스트)는 올해 1월부터 작가 8명의 소설을 한 가지 주제로 엮는 키워드 기획을 ‘빙의물’로 내세웠다. “회빙환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며 여러 매체를 통해 ‘다시 살기’라는 아이디어가 소비되는 요즘, 내가 아닌 내가 되는 일을 문학적 언어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는 취지다.
회빙환은 문학상의 영역에도 발을 들였다. 올해 한겨레문학상의 심사평에는 응모작 가운데 “타임 루프, 타임 슬립 설정 또는 회빙환 등 장르 코드가 발견되는 작품도 다수였다”는 언급이 등장했다. 웹소설이 아니라 아예 회빙환을 주제로 하는 학술논문들도 있다.
“회빙환은 진행 중…변모 지켜봐야”
이런 현상은 회빙환의 인기에 힘입었다. 서브컬처였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드라마가 늘면서 넓어진 독자층이 회빙환을 주류 문화로 밀어 올리는 모양새다. 다만 정통문학계에서 회빙환은 눈길을 끄는 일종의 ‘후킹’ 요소로, 웹소설의 서사와는 차이가 있다. 웹소설의 인물은 회빙환을 통해 고난 없는 복수극을 펼치거나 인생을 바꾸지만, 문학에선 내면의 욕망에 집중하는 통로로 회빙환이 사용되는 작품이 다수다. 현찬양 작가는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 있지만 진정한 ‘나’를 찾아 나아가는 과정이야말로 회빙환 소설의 핵심 주제”라고 말했다.
학술논문 ‘회빙환과 시간 되감기 서사의 문화적 의미’를 쓴 김경애 목원대 교수는 “스토리의 유형은 담기는 내용에 따라 새롭게 재창조된다”고 설명했다. “똑같이 현재의 지식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현실을 헤쳐나가는 방식과 인물의 신념에 따라 새로운 서사가 창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의 말처럼 비현실적인 회빙환을 통해 오히려 현실의 문제점을 짚는 작품들도 있다. 이른바 '정숙한 여성'을 기르는 신부 양성학교의 청소부로 빙의한 여성이 등장하는 황모과 작가의 ‘브라이덜 하이스쿨’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 속 양성학교의 소녀들은 불합리한 질서에 저항하고 “직접 만든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빙의해, 각자의 해방으로” 향한다.
김 교수는 “회빙환은 스테레오 타입이 아니라 아직까지 새로운 작품을 창출하고 있는 진행형의 양식”이라며 “그 변모를 조심스럽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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