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본회의장, 무관심 속 독백만'…필리버스터 무용론

한병찬 기자 2024. 7. 3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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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6일' 필리버스터에 남은 건 '막말·고성'…"진정성 사라져"
거부권 뻔한데 '무의미한 소모전' 지적…메시지엔 울림도 없어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방송 4법' 중 마지막 법안인 한국교육방송공사법(EBS법)에 반대하는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2024.7.30/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소수 정당의 '최후 보루'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5박 6일'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는 공허했다. 다수당의 법안 처리를 끝내 막지 못하더라도 반대 목소리를 보장하자는 취지는 중간중간 터져 나온 의원들의 고성과 막말로 얼룩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야당은 30일 오전 국회 본회의를 열고 EBS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하며 '방송4법'을 모두 통과시켰다. 국민의힘이 법안 제지를 위해 지난 25일부터 엿새에 걸쳐 진행한 필리버스터도 막을 내렸다.

111시간 27분이라는 역대 2번째 최장 시간 필리버스터 기록을 남겼지만 여야 모두 '무의미한 소모전'이라는 자조 섞인 지적이 나온다. 사실상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전망된 상황에서 여당은 무기력한 저항을, 야당도 실익 없는 독주를 펼쳤다는 것이다.

◇ 8년 전 '스타 정치인' 등용문 필리버스터…제도 취지 퇴색 비판도

필리버스터 제도는 제헌의회 때 규정됐다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3년 사라졌다. 이후 2012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면서 39년 만에 부활했다. 최악의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벗고 몸싸움 대신 소수 정당에 충분한 발언 기회를 주자는 취지였다.

국회선진화법 입법 이후 첫 필리버스터는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였다. 192시간 27분간 진행된 무제한 토론에는 여야 의원 총 39명이 참여했다.

여야 의원들은 열의를 갖고 참여했고 뜨거운 토론 속 '스타 정치인'이 탄생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첫 번째 주자로 나선 김광진 당시 민주당 의원이다. 김 의원이 단상에 오르자 네티즌들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고 급기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는 '김광진 힘내라', '필리버스터' 등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어 은수미 전 민주당 의원은 10시간 18분 발언하며 이목을 끌었고 마지막 발언자로 나선 이종걸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앞서 발언한 의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필리버스터는 민주주의의 발전이란 평가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처음 시행됐을 때와 달리 제도의 의미가 많이 퇴색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정쟁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무제한토론 종결 동의의 건에 대한 표결이 진행되자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2024.7.30/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 표결 때마다 퇴장 與, 표결 때만 입장 野…'진정성·메시지' 無

먼저 필리버스터를 대하는 여야의 태도에 진정성이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국민의힘은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본회의장을 비운 모습을 연출했다. 여당은 표결 때마다 본회의장을 빠져나갔고 야당은 표결 때만 본회의장에 모였다.

이에 우원식 국회의장은 토론을 잠시 중단시킨 후 "필리버스터를 국민의힘 의원들이 제기하셨는데 (국민의힘 의원이 본회의장에) 아무도 안 계신 건 매우 유감스럽다. 그렇게 하실 것이었다면 필리버스터 제기를 하지 마셨어야 한다"고 했다.

메시지도 빈약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법안의 부당함을 국민들에게 알리자는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텅 빈 본회의장에서 몇 시간에 걸쳐 '독백'에 가까운 말을 줄줄이 읽어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관심도 끌지 못하며 '그들만의 말 잔치'라는 비판도 나온다.

결국 남은 것은 의원들의 막말이었다. 지난 27일 방송법 개정안 필리버스터의 6번째 찬성 토론자로 나선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당을 향해 "여러분들이 얘기하는 싸구려 좌파다 뭐다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의원은 발언 도중 마이크를 옆으로 치우고 "이런 정말 XX들이"라며 비속어를 쓰기도 했다.

여당 측 의원들이 "시끄럽다"고 반발하자 박 의원은 "시끄럽다니. 내가 말하고 있는데, 내가 참았던 것"이라며 소리를 질렀다. 이외에도 "여기서 보니 (여당 의원석이) 좌익이네", "지겨우면 쉬었다 와라"고 발언했다.

신동욱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변인은 29일 논평을 통해 박 의원이 부적절한 표현을 썼다며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다만 박 의원의 발언이 27일 나왔던 만큼 국민의힘도 필리버스터의 내용을 확인 안 하다가 뒤늦게 알려지자 대응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bc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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