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반복돼도 유족은 여전히 외로운 싸움”···국회에 모인 참사·산재 유족들
“참사를 겪고 난 뒤 ‘왜 내 가족에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를 끊임없이 스스로 물었습니다.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예방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들에게는 왜 이런 사고가 났고 왜 내 가족이 죽었는지를 알 권리가 있습니다. 국회가 가진 입법권으로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처벌을 위해 제도 개선을 해주십시오.”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 대표 윤석기씨의 호소가 30일 ‘국회 생명안전포럼’ 발족식이 열린 국회 의원회관에 울려 퍼졌다. 윤씨 외에도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 등 사회적 참사 피해 유가족과 산업재해 사건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이들은 잊을 만 하면 반복되는 참사·재해에도 불구하고 규명되지 않는 진실과 느슨한 책임자 처벌로 유족들만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하는 현실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먼저 참사·재해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산업재해와 관련해선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책임을 강조했다. 부산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추락사한 경동건설 노동자 고 정순규씨의 아들 정석채씨는 “노동부와 산업안전공단은 기업이 제출한 산업재해 조사표를 근거로 조사하기 때문에 산재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몇 해 전 광주 아이파크 산재 사망 당시에도 내부 고발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실체가 드러나지 못했을 것”이라 말했다. 김태윤 화성 아리셀산재피해가족협의회 공동대표도 “3년간 아리셀 공장에서는 4차례 폭발 사고가 있었는데도 아리셀은 노동부 위험성 평가에서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어 산재보험률이 인하됐다”며 “노동부를 신뢰할 수 없어 민관 합동 기구를 통한 조사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족들의 알 권리 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윤석기씨는 “20여년 전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유족들이 요구하니까 그제서야 재조사에 나서 사체 14구와 유니폼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유족들은 왜 죽었는지 알 권리가 있지만, 이태원 참사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도 정부는 오히려 유족들 간의 소통을 가로 막아 유족들이 직접 싸워야 했다”고 말했다.
심야근무 이후 사망한 쿠팡 노동자 고 장덕준씨 어머니 박미숙씨는 “사측은 정보 보호라는 명목하에 산재 신청 시 유족들에게는 아들에 관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더니 산재 승인이 난 지금은 업무상 질병 판정서도 신뢰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락 산재사고로 사망한 인우종합건설 노동자 고 문유식씨 딸 문혜연씨도 “사측은 안전을 위한 난간도 설치하지 않고, 안전모도 지급하지 않았는데도 사고 경위가 한파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22대 국회가 참사·산재 책임자를 강력히 처벌할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가족 협의회의 장성수씨는 “얼마전 경기 평택 지하차도도 오송처럼 물에 잠겼지만 사전 차단이 잘 이뤄져 인명피해가 없었는데 오송은 왜 막지 못했는지 의문”이라며 “경영 책임자뿐 아니라 공무원 책임자도 엄정히 처벌하고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기업은 대형 로펌과 처벌불원서을 앞세워 기소조차 못하게 막으려고 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을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하고 재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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