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의 총알받이로 전락한 필리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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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의 위상이 추락했다.
2019년 공직선거법, 2020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을 막기 위해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에 나섰다.
2022년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저지를 위해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필리버스터가 잦아질수록 국민적 관심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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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보루'는 옛말… 소모적 정쟁
'필리버스터'의 위상이 추락했다. 국회에서 소수당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정쟁의 총알받이로 전락했다. 다수당의 입법독재를 막기 위해 본회의장에서 무제한 토론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합법적 행위가 22대 국회 들어 굴욕을 겪고 있다. 필리버스터가 너무 잦아 주목도와 진정성이 떨어지는 데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위한 명분 쌓기로 변질된 탓이다.
국민의힘은 방송4법 처리를 막기 위해 25일부터 필리버스터에 나섰다. 본회의장 연단에 의원들이 돌아가며 서는 5박 6일간의 강행군은 30일 끝났다. 사실상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여당 의원들이 전원 퇴장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방송4법이 차례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즉각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앞서 필리버스터의 장애물을 넘은 법안들 모두 거부권에 막혀 국회로 다시 돌아왔지만 재의결 요건인 재석 3분의 2(200석)를 넘지 못해 예외없이 폐기된 전례를 다시 반복할 참이다.
필리버스터는 군사정권 당시 민주적 저항의 상징이었다. 의석수 부족으로 법안 통과를 막지 못하는 대신 여론에 호소하는 전략이었다. 이에 1973년 폐지됐다가 2012년 국회선진화법으로 부활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필리버스터가 실제 적용된 건 2016년 2월 테러방지법 처리 때다. 무려 43년 만에 등장한 필리버스터에 여론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찬사를 쏟아내며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후 핵심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필리버스터가 최후의 카드로 부각됐다. 2019년 공직선거법, 2020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을 막기 위해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에 나섰다. 2022년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저지를 위해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하지만 필리버스터를 남발하지는 않았다. 아껴뒀다가 필요할 때 고육책으로 꺼내는 카드였다. 반면 22대 국회는 달랐다. 국민의힘은 3일 채 상병 특검법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에 나서더니 불과 22일 만에 다시 방송4법에 맞서 재차 같은 선택을 했다. 더구나 5박 6일간의 릴레이 필리버스터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필리버스터가 잦아질수록 국민적 관심은 떨어졌다. 검색량을 살펴볼 수 있는 네이버 트렌드에 따르면, 2016년 2월 4주차 필리버스터에 대한 검색량을 100이라고 봤을 때 올 7월 1주차 채 상병 특검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1.3에 불과했다. 2019년 11월 5주차 선거법 당시 39.7, 2020년 12월 2주차 공수처법 때는 11.6, 2022년 4월 5주차 검수완박 시점에는 1.7로 나타나 필리버스터 행사 주기가 짧아질수록 검색량은 크게 하락했다. 소수당의 의사표현이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갈수록 거들떠보지 않는 셈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를 놓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앞서 여당에서 '명분'을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이만큼 노력했으니 거부권이 정당하다는 논리다. 여당과 대통령실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국민의힘 원내 관계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법안이라도 여당이 국회에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며 "무용지물이란 걸 알면서도 이 방법 외엔 다른 게 없다"고 토로했다.
김도형 기자 nam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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