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한국인 부커상 심사위원 안톤 허… 그가 말하는 부커상과 한국문학, ‘궁합’ 좋아진 이유

김소민 기자 2024. 7. 3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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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의 파급력을 알기에 더 신중하게 심사에 임할 겁니다."

최근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심사위원으로 지명된 안톤 허(허정범·43) 번역가의 표정은 진지했다.

한국인으로 부커상 심사위원을 맡은 건 그가 처음.

26일 그를 만나 부커상 심사 과정과 한국문학의 경쟁력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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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허(허정범·43) 번역가.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부커상의 파급력을 알기에 더 신중하게 심사에 임할 겁니다.”

최근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심사위원으로 지명된 안톤 허(허정범·43) 번역가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는 2022년 정보라의 ‘저주토끼’(정보라),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올린 실력파 번역가다. 한국인으로 부커상 심사위원을 맡은 건 그가 처음. 그는 어렸을 때 부친을 따라 9년간 미국 등 해외에서 살면서 영어와 친숙해졌다고 한다. 26일 그를 만나 부커상 심사 과정과 한국문학의 경쟁력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시상식은 내년 5월 20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다. 이보다 앞서 내년 2월 25일 1차 후보작(12~13권), 4월 8일 최종 후보작(6권)이 각각 발표된다. 후보작 접수는 이미 지난 10일 시작됐다. 작가의 국적과 상관없이 영어로 번역돼 영국 및 아일랜드에서 출판된 작품이 대상이다.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에는 지금까지 페르시아어, 베트남어, 아르메니아어 등 63개 국어로 원작이 쓰인 작품들이 심사 대상이 됐다. 부커상이 ‘문화계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후보작 접수가 시작되자 심사위원들에 대해 함구령이 내려졌다. 내년도 후보작이 되는 올 5월 1일부터 내년 4월 30일 사이에 출간된 번역서에 대해 어떤 논평도 할 수 없는 것.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언급하는 것도 금지이고, 추천사도 쓸 수 없다. 허 번역가는 “지금도 추천사 제안 메일이 계속 들어오는데 ‘죄송하지만 할 수가 없다’고 답장하는 게 일”이라며 웃었다.

이번 심사위원단은 그를 비롯해 소설가, 시인, 편집자, 작곡가 등 총 5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매달 20~30권씩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한 뒤 합의제로 후보작을 정한다. 지난번 수상작을 정했던 심사위원단은 모두 149권을 읽었는데, 매년 대상 작품 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허 번역가는 2021년 전미번역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250권의 출품작을 읽었다. 책이 좋아서 한다지만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보수를 묻자 그는 “적당히 주는 수준”이라며 말을 아꼈다.

최근 몇 년 새 부커상과 한국 문학은 ‘궁합’이 좋다. 2016년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수상한 이후 2018년 한강의 또 다른 소설 ‘흰’, 2022년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토끼’, 2023년 천명관의 장편 ‘고래’, 그리고 올해 황석영의 장편 ‘철도원 삼대’가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는 이런 한국 문학의 부상에는 번역 스타일의 변화가 큰 몫을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영국인 데버라 스미스의 ‘채식주의자’ 번역을 계기로 영미 독자들에게 읽히는 ‘의역’이 본격화됐다는 것. 이전에는 영문학자들 위주로 딱딱한 직역이 이뤄져 영미 등 시장에서 외면을 받았다는 얘기다. 그는 “한국 문학이 갑자기 대단해진 게 아니다. 한국 문학은 항상 대단했다. 다만 어떻게 번역해야 영미권에서도 통할지 이제 스타일이 각인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커상 후보에만 올라도 판매량이 크게 늘어 외신에선 ‘부커 바운스(Booker bounce)’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2007년 출간 후 10년간 국내에서 2만 부가 팔렸는데, 2016년 부커상 수상 직후 2주 만에 50만 부 넘게 판매됐다. 현재 ‘채식주의자’는 타밀어, 네팔어, 우르두어 등 40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허 번역가는 더 많은 한국 작품이 해외에서 주목받기 위해선 번역에 대한 지원 확대가 중요하다고 했다. 영문으로 번역되는 한국 작품이 1년에 10~20권에 불과하다는 것. 2021년 전미번역상 심사위원 당시 읽은 250권의 번역서 중 한국 작품은 5권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 문학 작품을 해외에서 팔려면 번역가가 그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번역가는 황석영의 ‘수인’, 강경애의 ‘지하촌’,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방탄소년단(BTS) 회고록 ‘비욘드 더 스토리’ 등을 영어로 번역했다. 직접 쓴 영문 소설 ‘투워드 이터니티’(Toward Eternity)는 미국에서 지난 9일 출간됐다. 그는 BTS의 리더 RM(본명 김남준)을 언급하며 “RM 씨를 한번 만나게 된다면 큰절하고 싶다. RM이 추천한 책은 해외에 있는 독자들도 일단 한 번 더 본다. 한국 문학을 위해 가장 큰 공을 세운 분이 아닐까 싶다”며 치켜세웠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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