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두로 당선 거부한다” 성난 베네수엘라 시민들 항의 시위 격화
지난 28일(현지시간) 실시된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집권 통합사회주의당이 선거 결과를 조작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후폭풍이 일고 있다. 불투명한 개표 과정에 반발하는 시민들이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동상을 부수고 화염병을 던지는 등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야권의 대선 결과 불복을 ‘쿠데타’로 규정하고,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매체 엘디아리오는 29일(현지시간) 아라과, 카라보보, 바리나스 등 전국 곳곳에서 대선 재검표를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길거리를 꽉 메운 시민들은 냄비를 두드려 소음을 내는 ‘카세롤라소’ 시위를 벌였다.
북서부 라루차에서 열린 시위 행렬에 합류한 미구엘 사르살레호(64)는 “그(마두로 대통령)는 선거에서 졌고, 거기에 있을 권리가 없다”며 “우리는 청년들이 일하고 (돈을) 잘 벌 수 있는 나라를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베네수엘라에는 노인만 남게 될 거다”라고 BBC 방송에 말했다.
엑스(옛 트위터)에는 시위대가 마두로 대통령이 그려진 대형 선거 포스터를 찢거나, 마두로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인 차베스 전 대통령의 동상을 무너뜨리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올라왔다. 동상이 바닥에 떨어지자 시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시위가 격화하면서 군경은 무력 진압에 나섰다. BBC는 수도 카라카스에서 보안군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고무탄을 쐈다고 전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대통령궁을 봉쇄하고, 국회의사당과 선거관리위원회 건물 보안을 강화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은 카라카스에서 총성이 여러 차례 들렸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 현지 인권단체 ‘포로 파넬’은 엑스에 올린 글에서 북서부 야라쿠이주에서 최소 1명이 사망하고, 46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로페스 베네수엘라 국방부 장관은 군인 20명 이상이 총상 등을 입고 다쳤다고 말했다.
선거 결과에 불복한 ‘민주야권연합’(PUD)은 선거관리위원회에 개표 기록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PUD를 이끄는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 PUD 후보가 73.2%를 득표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며, 선관위는 원 절차대로 홈페이지에 관련 기록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투표 이튿날 바로 마두로 대통령에게 당선 확인증을 준 선관위는 지역별 후보 득표율과 1, 2위 후보 외 다른 후보들의 득표 현황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
선관위의 당선 확정 발표가 나온 직후 마두로 대통령의 ‘걸림돌 제거 작업’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그는 이날 당선 축하 행사에서 후안 과이도 전 임시대통령을 언급하며 “(야권이) ‘과이도 2.0’이라 불리는 쿠데타를 감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위는 “우익 극단주의 단체의 소행”으로 지칭했다.
과이도는 2018년 대선 당시 마두로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이 나오자 이듬해 야권과 미국 등의 지지를 업고 임시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그는 몇몇 군인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해 지난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타레크 윌리암 사브 검찰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북마케도니아에서의 (개표 시스템) 해킹 시도를 포착했다”며 야권에 대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기밀 정보에 따르면 이 사건은 (과거 마두로의 정적이었던) 레스테르 톨레도와 관련돼 있다”며 “야권 후보를 돕기 위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했다.
마두로 대통령의 당선과 관련해 국제사회는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러시아, 중국, 이란, 쿠바는 그의 재선을 축하했다. 좌파 성향의 정부가 들어선 브라질, 멕시코는 “개표 과정을 지켜보겠다”며 당선 축하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관망했다.
우파 지도자가 있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9개국은 미주 국가 연대체인 미주기구(OAS)에 베네수엘라 대선 결과 재검토 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긴급 이사회 소집을 요청했다. 그러자 마두로 행정부는 아르헨티나, 칠레, 코스타리카, 페루,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 우루과이 등 7개국에 대해 단교를 선언했다. 파나마와 도미니카공화국을 각각 오가는 항공편 운항도 중단시켰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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