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울음소리에 야생동물도 괴롭다 [강석기의 과학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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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약속이 있어 서울 공덕역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녹음한 소리를 비교해보니 참매미였는데, 공덕역 주변에 올해 5년 주기를 마치는 참매미 무리가 있는 걸까.
우리나라 매미는 주기를 엄격히 지키지 않아 해에 따른 편차가 크지 않다는데 별일이다.
매미가 유충으로 보내는 기간의 주기성은 북미대륙에 사는 주기매미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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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지난주 약속이 있어 서울 공덕역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역사 계단을 올라 도로에 나서자 엄청나게 시끄러웠다. 가로수 곳곳에 매미가 붙어 있었고 심지어 날아가다 필자 머리에 부딪히는 녀석도 있었다. 지인을 만나 일을 보고 식당을 가려고 경의선숲길을 좀 걸었는데 여긴 더 심했다. 우화하고 남은 허물 10여개가 붙은 나무줄기가 있고 한눈에 매미 서너마리가 들어오기도 했다. 울음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유심히 살펴봐도 매미를 찾기 어려운 게 보통인데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우리나라에는 매미 10여종이 있고 유충으로 5년 정도 땅속에 있다가 땅 위로 올라와 탈피하고 성충이 된다. 녹음한 소리를 비교해보니 참매미였는데, 공덕역 주변에 올해 5년 주기를 마치는 참매미 무리가 있는 걸까. 우리나라 매미는 주기를 엄격히 지키지 않아 해에 따른 편차가 크지 않다는데 별일이다. 아니면 천적이 거의 없어 개체 수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일까.
매미가 유충으로 보내는 기간의 주기성은 북미대륙에 사는 주기매미가 유명하다. 이름처럼 이들은 13년 또는 17년인 주기를 엄격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한데, 등장 시기에 따라 열다섯 무리로 나뉜다. 특히 올해는 17년 주기인 무리13과 13년 주기인 무리19가 동시에 출현해 화제가 됐다. 1803년 이후 무려 221년(=17×13) 만이고 다음 동시 등장은 역시 221년 뒤인 2245년이다. 두 무리의 개체 수는 1조마리가 넘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식지가 겹치는 지역은 밀도가 높았다.
주기매미의 극단적인 개체 수 변화는 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17년 주기인 무리10이 등장한 2021년 현장 조사 결과 주기매미 출현은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곤충을 잡아먹고 사는 새 같은 동물에게 주기매미는 차려놓은 밥상이라 굳이 힘들여 평소 먹이인 다른 곤충을 찾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이들의 개체 수가 늘어난다. 그 결과 초식 곤충의 먹이가 되는 식물이 큰 피해를 본다. 다만 수주 동안 살다 죽은 엄청난 매미 사체가 천연 비료가 되므로 어느 정도 보상이 된다.
지난달 학술지 ‘포유류학저널’에는 2021년 무리10 매미의 출현이 포유류 동물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미국 퍼듀대 연구자들은 주변 숲에서 매미가 나타날 가능성이 큰 12곳에 카메라와 녹음기를 설치해 야생동물의 행동을 기록했다. 포착된 포유류 10종 가운데 라쿤(미국너구리)과 흰꼬리사슴이 큰 영향을 받았다.
라쿤은 예상대로 매미가 많아질수록 카메라에 자주 포착됐는데, 영양이 풍부한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을 때 포식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반면 매미와 직접 관련이 없는 흰꼬리사슴은 매미 밀도가 가장 높은 기간에 거의 포착되지 않았다. 이런 예상 밖의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자들은 “매미 울음소리가 너무 커 천적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어려워 위험해진 지역을 피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경의선숲길을 걷다가 매미 소음에 정신이 사나워 원래 목적지를 포기하고 중간에 다른 식당에 들어갔다. 그런데 뜻밖에 맛집이라 전화위복이 됐다. 무더위가 지나가면 또 한번 들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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