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에서 즉시 떠나라" 대피령…이스라엘-헤즈볼라 전운 고조

김종훈 기자 2024. 7. 3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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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독·프 등 서방국 자국민들에 잇단 권고…
레바논 오가는 국제항공편 취소·결항 증가…
미국은 "레바논 수도와 인프라 공격 안돼" 중재
27일(현지시간) 이스랑레 분쟁지역 골란 고원 내 위치한 마즈달 샴 축구경기장이 폭격을 받아 10대 12명이 사망했다./로이터=뉴스1

지난 2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점령지인 골란고원에서 발생한 로켓 폭격으로 어린이를 포함해 12명이 숨진 사건 이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면전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서방국들은 자국민들에게 "레바논에서 신속히 떠나라"며 대피령을 내렸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레바논 수도와 주요 시설 등에 대한 보복 폭격을 자제하라며 갈등 중재에 나섰다.

30일 로이터통신·파이낸셜타임스(FT)·가디언 등 외신을 종합하면 미국·영국·독일·프랑스·노르웨이·아일랜드 등 서방국들은 일제히 레바논에 대한 여행경보를 발령하고 "레바논 여행을 피하고 현지에서 신속히 출국하라"고 자국민들에게 권고했다.

레나 비터 미국 국무부 영사담당 차관보는 이날 영상 메시지를 통해 레바논 내 자국민에게 "위기 시 행동계획을 마련하고 위기가 시작되기 전에 떠나라"며 "항공기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장기간 그곳에서 대피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앞서 미 대사관은 미국 시민에게 레바논 여행을 재고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레바논을 오가는 항공편 일정 조정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조언했다.

독일 외무부 역시 "레바논을 떠나기 위한 모든 선택지를 긴급히 활용하라"며 "모든 독일인에게 아직 시간이 있는 동안 레바논을 떠나라고 촉구한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무장관도 이날 "영국 국민들 레바논을 떠나고 그 나라로 여행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골란 고원 폭격사건 이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오가는 국제 항공편은 잇따라 결항됐다. 독일 루프트한자와 에어프랑스, 터키항공, 중동항공, 로열요르단항공 등이 레바논으로 향하는 항공편을 취소하거나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조만간 레바논 공항 등 국가 인프라 시설을 폭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스라엘은 골란고원 폭격을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소행으로 보고 전면전을 선포했지만 실제로 대대적인 전쟁으로 확대할 지는 미지수다. 가자지구 전쟁과 인권 유린 논란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전쟁을 벌이는 것은 부담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분쟁 분석 기관 국제위기그룹(ICG)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연구하는 마이라브 존제인 연구원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대규모 폭격을 감행하고도 갈등 고조를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아틀란틱 카운슬의 니콜라스 브랜포드 연구원도 "폭격 사망자들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기 때문에 감정에 치우칠 수는 있지만 이스라엘은 갈등 고조를 원치 않을 것"이라고 봤다.

반면 익명의 중동·유럽 외교가 인사 2명은 "이스라엘은 베이루트와 민간 시설을 폭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며 "갈등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27일(현지시간) 이스랑레 분쟁지역 골란 고원 내 위치한 마즈달 샴 축구경기장이 폭격을 받아 10대 12명이 사망했다./로이터=뉴스1


미국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면전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이스라엘은 골란고원 폭격에 대응할 권리가 있다"면서도 "누구도 확전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이스라엘이 베이루트 공항과 교각을 폭격하지 못하도록 미국이 외교력을 모으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4월 이스라엘-이란 교전 때와 비슷한 수준에서 마무리되도록 물밑에서 중재 중이라는 소식통의 설명도 전했다. 당시 이란은 시리아에 위치한 자국 영사관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됐다면서 드론과 미사일로 이스라엘 본토를 공습했다. 이스라엘이 폭격으로 맞대응하면서 중동 확전 우려가 높아졌으나 갈등이 그 이상 고조되지는 않았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수뇌부만 노리거나 헤즈볼라 본거지인 다히야를 공습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브랜포드 연구원은 "이스라엘이 다히야를 공습한다면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도시 하이파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라며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행보에 맞춰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번 골란고원 폭격 지역이 이스라엘 드루즈 신자 거주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헤즈볼라가 오폭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CNN에 따르면 드루즈는 이슬람 소수종파의 하나로, 대부분은 시리아인을 자처한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이 1967년 골란고원을 점령한 이후 시민권 발급을 제안했을 때 상당수가 거부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내에서 차별받는 소수 계층이다. 이스라엘과 적대하는 헤즈볼라가 드루즈 거주 지역을 폭격할 마땅한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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