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통계 감춘 교육부, 정부의 제멋대로 ‘통계’ 취사선택 언제까지

김원진 기자 2024. 7. 3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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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교육부총리가 지난 12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눈을 감고 의원질의를 듣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교육부가 2023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표본조사 결과를 공개하려던 발표 일정을 돌연 취소했다. 교육부가 정책 사각지대 발굴을 명목으로 각종 교육데이터 공개범위는 확대하면서 부정적 이슈와 관련된 통계는 감추거나 의미를 축소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부처가 각종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방식으로 공론화를 저지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30일 취재를 종합하면 교육부가 지난 26일 기자단에 배포 예정이었던 ‘주간보도계획’에는 ‘※보도참고자료 제공 안내 - 23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표본조사) 결과 발표’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지난해 실시한 2차 학폭 실태조사 보도참고자료의 당초 공개 예정일은 오는 31일이었다. 그러나 금요일이었던 지난 26일 오후 공식 배포된 주간보도계획에서는 ‘2023년 2차 학폭 실태조사(표본조사)’가 빠졌다. 정부 부처는 통상 매주 금요일 다음주 보도계획을 기자단에 공개한다.

교육부는 오는 9월 2024년 1차 학폭 실태조사를 발표할 때 함께 ‘2023년 2차 학폭 실태조사’도 공개하겠다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어차피 9월에 (2024년 1차 학폭 실태조사를) 발표하니까 묶어서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지난해 표본조사로 진행된 2차 학폭 실태조사 공개가 늦어졌기 때문에, 올해 조사 결과와 묶어 9월에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학폭 실태조사는 연 2회 실시한다. 한 회는 전수조사로, 나머지 한 회는 전체 학생의 4% 표본조사로 이뤄진다. 두 차례 학폭 실태조사 결과는 모두 공표해야 한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3년 1차 학폭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학폭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9%(5만9000명)로 2013년(2.2%)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교육부가 주요 이슈에 관한 통계 자료를 ‘보도자료’가 아닌 ‘보도참고자료’ 형태로 공개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보도자료는 교육부 홈페이지에 게재되며, 시민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고 보다 공식적인 성격을 띤다. 하지만 보도참고자료는 통상 통계 중심으로 기자들에게만 배포된다.

교육부는 최근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의 순직 1주기 때에도 ‘교육활동 보호 관련 통계’를 보도참고자료로 냈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설명이나 해석이 들어가지 않고 자료로 제공하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보도자료에는 각종 정부 통계에 대한 설명과 해석이 붙는 반면, 보도참고자료는 통계 위주로만 제공한다는 취지다.

교육부가 교육 관련 통계나 데이터를 공개하면서 상황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점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교육부는 지난 5월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데이터를 기초 지방자치단체 단위까지 연구자에게 전면 개방해 정책 사각지대를 발굴하겠다고 했다. 교육 데이터 전면 개방은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추진하는 주요 정책이다. 반면 교육부에 부정적 여론이 일 가능성이 있는 학폭 실태조사 데이터 발표는 최대한 늦추는 것에 대해 ‘이중잣대’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홍섭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은 “정권을 가리지 않고 교육부에선 통계를 입맛대로 공개하는 등의 일이 적지 않았다”며 “발표 시기 등을 조정해 해석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려는 시도라면 특히 문제”라고 했다.

정부의 실태조사나 통계 수치 ‘감추기’는 교육부만의 일은 아니다. 여성가족부는 올해 2023년에 실시한 가족실태조사, 청소년종합실태조사 등을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하면서 악화된 성평등 인식, 계층간 결혼 인식 격차 등 유의미한 수치가 나온 문항과 답변을 보도자료에서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정부의 데이터 취사선택 때문에 정부 부처에서 용역을 받아 연구를 수행한 대학이나 국책연구기관 소속 연구자들의 불만도 크다. 정부 연구용역사업을 수행하는 한 수도권 대학 교수는 “정부가 계약 주체이자 ‘갑’이기 때문에, 중요한 데이터를 은근슬쩍 감춰도 문제 제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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