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들고 뛰쳐나와 '깡깡!'…"우리 대통령 아냐" 혼돈의 베네수엘라

이지현 기자 2024. 7. 3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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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현지시각)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3선 선거 결과에 반대하는 시위 참가자가 냄비를 두드리며 '카세롤라소' 시위를 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대선을 둘러싼 부정·불공정 정황이 쏟아지면서 이에 항의하는 유권자들의 시위가 거세지고 있다. 2024.07.30./AP=뉴시스

베네수엘라 대선을 둘러싼 '부정선거'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좌파 성향의 현직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승리했다는 결과에 분노한 베네수엘라 시민들은 냄비·프라이팬 등을 집어 들고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이를 규탄하며 구체적인 선거 결과를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29일(현지시간) AP통신·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이날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전날 진행된 대선 개표 결과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카세롤라소'(cacerolazo) 시위를 벌였다. 카세롤라소는 냄비·프라이팬·접시 등 주방용품들을 두들기는 중남미 특유의 시위 방식이다.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38)은 "많은 사람이 선거가 도둑맞았다고 확신했다"며 "우리는 변화를 갈망하고 있는데 마두로는 우리를 비웃고 얼굴에 똥칠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33)도 "개표 결과가 매우 실망스럽다"며 "마두로는 더 이상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던지며 진압에 나섰다.

앞서 현직 마두로 대통령은 이날 자신이 3선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며 대통령궁 밖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축하 파티를 열었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승리를 안겨 주셔서 감사하다"며 "베네수엘라는 이 땅에서 파시즘, 증오, 악마와 싸워 승리했다"고 말했다.

마두로 대통령의 주장대로라면 그의 임기는 2030년까지 6년 연장된다. 총 18년간 장기 집권 문이 열린 셈이다.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자정쯤 기자회견을 열고 "80% 가량 개표한 결과 마두로 대통령이 득표율 51.2%(510만표)로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민주 야권 연합 단일후보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의 득표율은 44.2%(440만표)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는 당초 선거 직후 이뤄진 출구조사와 정반대 수치여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 에디슨 리서치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우루티아 후보는 65% 득표율로 마두로(31%) 대통령을 크게 따돌릴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투표 이전까지 여론조사에서도 마두로 대통령이 25%포인트(p) 이상 차이로 우루티아 후보에 크게 패배할 것으로 나타났다. 베네수엘라 선관위 역시 마두로 정권의 압력을 받고 있어 논란은 더 가중됐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각) 베네수엘라 대선 결과 대통령 당선인으로 확정된 후 카라카스의 대통령궁 밖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화답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선관위는 80%가량 개표한 결과 마두로 후보가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마두로 대통령은 3선에 성공하면서 내년부터 6년 더 베네수엘라를 이끈다. 2024.07.29./AP=뉴시스

야당은 "민의가 존중될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선거 불복을 시사했다. 당 지도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기자회견에서 "자체 조사에 따르면 우루티아가 73.2%를 득표했다"며 "우루티아가 승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도 선거 결과를 규탄했다. 미국 행정부 관계자는 "마두로 당국은 선거가 끝났다는 입장이지만 이 선거의 신뢰성과 관련해 국제 사회는 심각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며 "미국은 이러한 우려가 해결되도록 계속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베네수엘라 국민의 의지와 실제 표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발표된 투표 결과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페루 등 중남미 국가 정상들도 베네수엘라 대선 결과에 일제히 문제를 제기했다. 독립적인 감시단이 참석한 가운데 투표 결과에 대한 감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행정부는 "우리는 개표 과정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결과에 대한 공정한 검증을 통해 국민 주권의 기본 원칙이 준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도 "선거 결과를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베네수엘라 외교부는 이날 "중남미 7개국 외교관들을 자국에서 추방한다"며 "가장 비열한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적 입장에 헌신하고 우익 미국에 종속한 정부"라고 비판했다.

한편 마두로 정권은 2013년 '포퓰리즘 사회주의'를 폈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사망 뒤 출범했다. 한때 부유했던 석유 국가로 이름을 날리던 베네수엘라는 마두로 정권이 들어선 이후 10년 만에 국내총생산(GDP)이 80% 감소하는 등 경제침체를 겪고 있다. 3000만명에 달했던 베네수엘라 인구는 10년 새 최대 800만명 이상 줄었다.

이지현 기자 jihyun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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