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보고 막말 논란까지...5박6일 방송4법 필리버스터
역대 두 번째로 긴 111시간, 25일부터 30일까지 밤샘 필리버스터
이준석 "'바이든-날리면' 보도 가치 있었다" 전종덕 "노조 비방 중단" 김용태 "EBS는 건들지 말라"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역대 두 번째로 길었던 방송4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설치법) 반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30일 오전 8시50분경 종료됐다. 방송4법이 상정되자 국민의힘이 본회의 표결 저지를 위해 시작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지난 25일 오후 5시30분경 시작해 5박6일 111시간27분만에 마무리됐다. 역대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은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당시 192시간27분이다. 이번 기록은 2016년에 이어 두번째다.
야당에서 법안을 상정하면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고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시작 24시간 이후에 토론 종결권이 발생하면 이를 통해 강제로 종료한 후 표결을 진행하는 순서로 법안 통과가 이뤄졌다. 방통위설치법 필리버스터는 총 24시간7분간 진행했으며 해당 개정안은 26일 오후 통과했다. 방송법 필리버스터는 총 30시간46분간 진행한 뒤 28일 오전 1시경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후 방문진법 상정 직후 진행한 필리버스터가 30시간55분만에 종결되고 야당은 29일 오전 8시30분경 방문진법을 통과시켰다. 마지막으로 한국교육방송공사법(EBS법)이 상정됐고 이후 24시간12분간 토론이 진행됐다. 30일 오전 8시48분 토론이 종결되고 EBS법도 통과됐다.
이번 5박6일 필리버스터에는 여야 의원 총 24명이 참여했다. 방통위설치법 필리버스터에는 최형두·한준호·박대출·모경종·이상휘·이해민·박충권 의원, 방송법에는 신동욱·이훈기·정연욱·전종덕·진종오·박선원 의원이 토론에 나섰다. 방문진법 토론에는 강승규·조계원·유용원·이준석·신성범·한민수·김장겸·김재원 의원이 단상에 섰고, EBS법 개정안에는 김용태·추미애·정성국 의원 등이 발언했다.
필리버스터 첫 발언자는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이었다. 25일 오후 5시29분부터 26일 0시6분까지 6시간30분 넘게 토론을 진행했다. 최 의원은 “KBS는 국민의 것인데 시청자위원회는 전체 방송을 대표할 수 없는 사람들로 이른바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의 영향력 하에 있거나 관계가 깊은 사람들로 의심받고 있다”라며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의 글을 인용하며 “괴물과 싸우겠다면서 더 큰 괴물이 되는 사태를 우리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이틀차 인사청문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26일 0시가 넘어가면서 야당이 기존 24~25일로 예정했던 청문회를 26일까지 진행하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최 의원은 “체력검증에 나섰다”며 야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전종덕 진보당 의원은 지난 27일 방송법 개정에 대한 찬성토론에 나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민주노총과 언론노조에 대한 왜곡과 비방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면서 “의원들이 앉아있는 국회의 바닥부터 지붕까지 노동자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으며 한국 사회 민주주의 토대를 만들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만든 주역들이 바로 노동자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방송4법 개정을 거부하고 방송장악을 시도하는 것은 자신의 수사외압과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등 비위 의혹을 감추기 위한 술수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며 “지금 윤 대통령의 방송장악 추진이 방송4법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번 필리버스터 과정에서 가장 오랜 시간 발언을 한 토론자는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지난 29일 오전 8시30분부터 EBS법 개정안 반대에 나선 김 의원은 이날 오후 9시46분까지 총 13시간12분간 발언해 지난해 12월 국정원법·남북관계발전법 등 개정안 통과 저지를 위해 나섰던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의 기록 12시간 47분을 넘어섰다. 본회의장 내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는 최장 기록을 갱신할 때와 발언을 마칠 때 박수가 나오기도 했다.
김 의원은 EBS 세계테마기행, 펭수, 뽀로로 등을 언급하면서 “세계테마기행이 어떤 정치적 편향성이 있고 EBS 자랑인 펭수가 정치적 편향성이 있거나 뽀로로가 문제가 되나”라며 “EBS는 건들지 말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저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도 비판하는데 민주당 의원들은 이재명 대표 비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야당을 겨냥하기도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방문진법 찬성 쪽 발언자로 나섰다. 이 의원은 “'바이든-날리면' 논란은 언론이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이것을 덮기 위해 하나의 방송국에 대해 사실상의 징벌적 조치를 내린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또 “정말 믿기 어려운 것은 이 방송장악의 결말은 장악하려고 했던 쪽에서 오히려 기대하던 성과를 내기보다는 정권을 내주고 선거에 지는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라며 국회의장이 내놨던 중재안을 찬성하기도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17일 여권에는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중단, 야당에는 방송4법 입법 강행 중단과 방통위원장 탄핵 소추 중단을 요청하며 정치권과 시민사회, 언론계와 학계가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여당이 거부했다.
막말 논란도 있었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 27일 오후 2시30분경 윤석열 정부의 '방송 장악'이 박근혜 정부 때의 '계엄 문건'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여당 의원들이 반발했고 우원식 의장이 “주제에 충실해 달라”고 했다. 박 의원은 여당 의원들에게 “지겨우면 좀 쉬었다 오시라”며 “여기(발언석)에서 보니 (여당 의원석이) 좌익이네”라고도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자리를 비워 우 의장이 “필리버스터를 국민의힘 의원이 제기했는데 한 분도 없는 건 유감”이라고 하자 김희정 국민의힘 의원 등이 본회의장에 돌아와 “박 의원이 주제와 관련없는 발언만 하고 국민의힘을 야유·모욕한다”고 했다. 이후 박 의원은 여당 의원석을 가리키며 “뭐하는 거예요 이자들이”, “이 XX들이”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관련해 신동욱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지난 29일 박 의원의 사과를 요구했다.
5박6일간 필리버스터가 이어지는 가운데 민주당은 주말 전당대회 일정으로 상당수 의원이 국회를 떠나기도 했고, 국민의힘 의원들도 조를 짜서 일부 의원들이 돌아가며 본회의장을 지켰다. 민영뉴스통신사 뉴시스는 참석한 의원들이 일제히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장면을 사진기사로 보도하기도 했고 한 국민의힘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야구 중계를 보는 장면을 포착하기도 했다. 의장단 가운데 국민의힘 출신인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본회의장에 불참하면서 야당이 비판하기도 했다. 주호영 부의장의 불참으로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학영 국회부의장이 3시간 교대로 사회를 보며 필리버스터 일정을 함께 했다.
이번 5박6일 필리버스터 마지막 토론자인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은 30일 오전 0시30분부터 8시48분까지 8시간18분 동안 필리버스터 마지막 발언자로 나섰다. 정 의원은 “학생들이 우리 역사를 상기하고 역사적 인물을 배울 수 있도록 만드는 프로그램을 EBS가 개발했으면 좋겠는데 모든 문제는 재정”이라며 “EBS가 지금 400억 원 가까이 적자가 있는 것을 꼭 기억하고 국회에서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프로그램) 품질 등이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정 의원 토론에 대해 “5박6일간 긴 필리버스터 기간 동안 가장 많은 국회의원이 참석한 자리이고 교섭단체 대표연설보다 더 긴 시간을 토론한 좋은 자리였다”고 말했다. 국회 본회의 산회 전 우 의장은 여야 대치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반복되는 상황을 비판하면서 “대통령이 야당과 대화·타협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입법부의 오랜 토론을 통한 주요 결정사항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신중히 해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은 방송4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신동욱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30일 오전 논평에서 “지난 5박 6일간의 방송장악 4법 저지 필리버스터, 그리고 3일간의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 청문회를 마치면서 민주당의 오만과 불통이 극에 달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국민의힘은 이제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해 민주당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를 반드시 막아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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