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통령과 한동훈, 굳이 하나 될 필요 있나”…진짜 중요한건 ‘웰빙정당’ 혁신 [매경포럼]

서찬동 선임기자(bozzang@mk.co.kr) 2024. 7. 3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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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몸과 원 팀 강조하지만
T·P·O 따라 전혀 다른 뜻
각자 주어진 역할과 소명
최선 다하면 나라에 기여
굳이 하나될 필요 있을까

“우리가 앞으로 하나가 돼...” 지난 24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만찬 자리. 이른바 ‘윤·한 갈등’ 재연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단합 의지를 다지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주목받았다. 전당대회에서 2위 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우리는 하나되는 원팀”이라며 거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만찬에서 한동훈 대표(왼쪽), 추경호 원내대표(오른쪽) 등과 함께 손을 맞잡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연합뉴스
일상에선 사랑 고백 때나 나옴 직한 ‘우리는 하나’가 선거철이면 자주 들린다. 더불어민주당도 새 당 대표가 정해지면 ‘하나’를 강조할지도 모르겠다. 국내뿐만 아니라 대선을 100일 앞둔 미국도 ‘원(One)’ 타령이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인스타그램에 “‘우리는 하나 운동’을 통해 영광스러운 한 나라를 만들자”고 호소하고 있다. 카멀라 해리스 후보도 “조, 우리는 한 팀”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를 유도하고 있다.

이런 걸 보면 ‘하나’는 배제와 통합, 위와 아래, 충성과 배신, 뜨는 인물과 지는 인물,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 등 이항 대립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정치권의 수사(修辭)인지도 모른다. 너와 내가 차별 없는 대등한 관계의 화엄 사상을 말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각자 위치에서 말하는 ‘하나’가 같은 뜻일 리가 없다. 표현은 같지만 드러나지 않은 의미를 잡아내는 문해력이 필요한 이유다. 과거 사례로 ‘한몸’이 무슨 뜻인지 연습해보자.

“나는 동맹(同盟)한 신하들과 ‘한몸’이니 참소와 이간이 있더라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1차 왕자의 난으로 집권한 조선 2대 왕 정종이 정사공신(定社功臣) 29명과 회동한 자리에서 한 말이다. 권력을 잡은 임금이 취임 직후 측근들에게 단합을 최우선 강조했을까. 오히려 그 뒤의 말이 ‘한몸’의 주석처럼 와닿는다. “맹세가 변하면 하늘이 반드시 벌을 주어 재앙이 자손들에게 미칠 것이다.” 회동에 참석했던 2등 공신 박포는 이후 이간질로 2차 왕자의 난의 원인을 제공했다. 그는 관직을 박탈당해 함경도 유배지에서 죽었고, 자손들은 모두 관노가 됐다. 임금이 ‘한몸’까지 언급했는데 배신하자 철저히 응징한 것이다.

아랫사람이 ‘한몸’을 말할 때도 있다. 훈민정음 편찬에 참여했던 정인지는 뛰어난 성리학자였지만 주사(酒邪)가 심했다. 술에 취해 임금을 ‘너’라고 부를 정도였다. 한번은 술자리에서 “법화경·대장경에 이어 석보(釋譜)까지 간행한 것은 옳지 않다”며 세조 면전에서 불교서적 편찬을 비판했다. 많은 신하들 앞에서 모욕 당한 임금은 노하여 잔치를 파하고 물러났다. 걱정되자 정인지는 ‘군신은 한몸’이라는 글을 세조에게 올렸다. “신하의 과실 때문에 귀양보내거나 죽이면 임금의 도리가 아니다”며 선처를 구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는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발화됐는지 T·P·O(시간·장소·상황)에 따라 맥락이 달라진다. 누구 발언인지도 중요하다. 일인자의 ‘하나’와 2인자의 그것이 같을 리 없다. 물론 3인자의 ‘하나’도 다르다. 지시나 위협이 될 수 있고 충성 맹세가 될 수 있다. 이간질이 될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의 ‘하나’는 당정이 단합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자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럼 어떻게 단합할 것인가. 윤 정부에서 국정 운영은 민심에서 멀어졌고 당정 관계도 수직으로 굳어지며 4·10 총선에서 참패했다. 한동훈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로 7·23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것은 건강하고 생산적인 당정 관계를 바라는 당심·민심이 반영된 것이다. 한 대표도 “민심 이기는 정치 없고, 민심과 한편이 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수평적 당정 관계 회복도 중요하지만, ‘웰빙 정당’ 혁신은 시대적 과제다. 당정이 국민과 국가를 위해 각자 맡은 임무를 다하면 된다. 굳이 다른 목소리를 누르고 ‘하나’가 될 필요는 없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서찬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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