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 ‘핸섬가이즈’ 손익분기점 달성…중간 규모 영화 부활 신호탄 될까
관객수 200만명이 천만 돌파보다 어렵다는 양극화 시대에 ‘탈주’와 ‘핸섬 가이즈’가 손익분기점을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파란 불의 흥행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한국 영화산업의 허리를 받치는 중간 규모 영화들이 씨가 말랐던 시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3일 개봉한 이제훈, 구교환 주연의 ‘탈주’는 29일까지 232만여 명의 관객(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모았다. 올해 한국영화 가운데 200만명을 돌파한 작품은 천만 기록을 세운 ‘파묘’와 ‘범죄도시4’ 그리고 ‘탈주’ 세 작품이 전부다. 지난달 26일 개봉한 이성민, 이희준 주연의 ‘핸섬가이즈’는 개봉 11일 만에 손익분기점 110만명을 넘겨 29일까지 173만여 명을 기록했다. 개봉 뒤 입소문이 중요해진 시장에서 두 영화는 개봉 4, 5주차에 이른 지금까지 끈질기게 뒷심을 발휘하며 주말마다 높은 좌석판매율을 기록 중이다.
남한으로 내려가려는 북한 병사와 이를 쫓는 추격전을 그린 탈주의 순제작비는 80억원, 손익분기점은 200만명이다. 북한 공간의 재현과 카체이싱 등 액션이 중요한 이 영화가 호황이었던 코로나 전에 만들어졌다면 제작비 100억원은 거뜬히 넘겼을 스케일의 작품이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위축된 투자 환경에서 제작이 성사되며 예산 규모가 축소됐다. 이종필 감독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시나리오의 많은 장면에서 이게 꼭 필요한지 고민하고, 있는 걸 잘 활용하려고 노력하면서 촬영을 마쳤다”고 했다. 한 예로 이 감독이 처음 받았던 시나리오에서는 탈출하던 규남(이제훈)이 높은 다리에서 뛰어내려 물속에 빠지는 장면이 있었는데 북한에 있을 법한 오래된 다리와 그 아래 큰 강이 있는 장소를 찾기도, 다리를 제작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전 같으면 컴퓨터그래픽 작업을 했겠지만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면서” 고민하다가 다리 설정을 없애고 규남의 큰 점프 액션으로 연출을 바꿨다.
대형 선전 문구 입간판으로 차가 돌진하면서 액션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보여준 장면은 “기왕에 어렵게 만들어놓은 입간판을 더 활용해보자는 차원에서 만든 신”이었는데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가 됐다. 이 감독은 “비용을 더 들여 스펙터클을 펼치면 좋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문턱 높아진 손익분기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제약 속에서 좋은 장면이 나올 수 있다는 걸 ‘탈주’를 찍으며 느꼈다”고 했다.
남동협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핸섬가이즈’는 순제작비 49억원으로 중급 규모에서도 작은 영화에 속한다.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캐스팅을 할 무렵 코로나 사태가 발생했다. 시장이 냉각되기 시작할 무렵 배급사에서 투자를 결정했다. 배급사 뉴 관계자는 “텐트폴(대작)만 즐비한 여름 시장의 틈새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극장과 부가 채널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중소형 장르 영화로 눈에 띈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9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42회차 만에 촬영을 끝냈다. 고립된 숲 속 산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단역과 강아지 봉구까지 18명이 출연진 전부인 데다 부산 기장의 오픈 세트장에서 전체 장면의 90% 가까이 찍었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의 제한과 예산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었다.
완성 뒤 개봉까지 3년이 넘어가며 이른바 ‘창고영화’로 분류되기도 했지만 배경과 의상 등이 시간 배경과 무관한 데다 한국영화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정통 코미디를 구사하며 되레 새롭다는 호평을 끌어냈다. 남동협 감독은 “적은 예산이었지만 촬영 진행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스태프들도 기꺼이 통상보다 적은 급여로 참여해줬다”면서 “제작이 위축된 코로나 상황에 대한 스태프들의 이해가 있었고, 한동안 한국영화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스타일의 영화라는 게 투자사에 통해 작품이 완성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핸섬가이즈’와 ‘탈주’가 흥행 뒷심을 발휘하는 데는 코로나 이후 바뀐 마케팅 트렌드 영향도 있다. 두 영화는 개봉 4, 5주차까지 무대 인사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보통 개봉 첫주나 2주차 주말에만 개봉 이벤트로 무대 인사를 하던 관행이 바뀐 것이다. 주요 출연진뿐 아니라 동료들의 응원까지 가세했다. ‘핸섬가이즈’는 정우성, 송중기, 박정민 등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들이 관객과의 대화에 나섰고, ‘탈주’에도 고아성, 손석구, 박정민, 전소니 등 인기 배우들이 참여했다. 허리 끊긴 한국영화를 되살려야 한다는 절박감에 바쁜 배우들까지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뉴 관계자는 “개봉 뒤 입소문의 힘이 커지면서 관객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어내는 게 중요해졌다”면서 “최근에는 주연배우의 개봉 뒤 스케줄까지 체크하면서 배우들이 상당 기간 무대 인사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개봉 일정을 조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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