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극장가 점령전서 밀린 한국영화…‘대박’ 대신 ‘소박’만 챙겼다
올해 여름 한국 영화에 ‘대박’은 없는 것일까. 미국 할리우드 대작들이 극장가를 점령하면서 ‘1000만 영화’를 노렸던 한국 대작들이 줄줄이 밀려났다. 자본을 많이 투자하지 않은 중·소규모 작품들만 ‘소박’을 터뜨렸다. 극장들이 특정 작품에 스크린을 몰아주면서 ‘1000만 영화’가 안 되면 ‘100만 영화’밖에 될 수 없는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다.
30일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KOBIS)을 통해 누적관객수를 살펴보면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 2>는 832만명을 기록했다. 6~7월 박스오피스 10위권에 올랐던 한국 영화 네 편의 누적관객수를 모두 합쳐도 따라가지 못한다. <핸섬가이즈>는 173만명, <탈주>는 232만명, <하이재킹>은 176만명,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67만명을 기록했다.
8월에도 한국 영화는 미국 대작과 어려운 싸움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마블 스튜디오의 <데드풀과 울버린>은 지난 24일 개봉해 닷새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현재 117만명을 기록했다. 넓은 관객층 확보에 불리한 ‘만 19세 이상 관람가’ 등급인데도 팬덤의 지지에 힘입어 흥행에 청신호가 켜졌다. 애니메이션 <슈퍼배드 4>도 같은 날 개봉해 현재까지 66만명을 모았다. 한국 영화는 <파일럿>(7월31일) <리볼버>(8월7일) <행복의 나라>(8월14일) <빅토리>(8월14일)가 차례로 개봉해 경쟁한다.
한국 영화는 제작 규모에 따라 희비가 분명하게 갈렸다. 제작비 100억원 이상의 대작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100억원 이하의 중·소규모 작품들은 연이어 ‘선방’했다. 여름 대작으로 꼽혔던 <하이재킹>(제작비 145억원, 손익분기점 300만명)과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185억원, 400만명)는 손익분기점을 넘기기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반면에 <핸섬가이즈>(49억원, 110만명)와 <탈주>(85억원, 200만명)는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겼다.
통상 여름은 한국 영화계가 대작들을 내놓는 시즌이었지만 올해는 중·소 작품들이 많았다. 위기감을 느낀 영화사들이 ‘안전한 선택’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급성장하고 극장 관객이 급감했다. 특히 지난해 여름에는 <더 문>(제작비 280억원, 손익분기점 600만명)과 <비공식작전>(200억원, 500만명)이 각각 관객 51만명, 105만명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대작을 제작할 의지가 꺾였다는 것이 영화계의 이야기다.
한국 영화 대작들의 흥행 부진은 작품성은 차치하고 ‘극장가 스크린 점령전’에서 밀린 탓이 크다. <인사이드 아웃 2>가 CGV·메가박스·롯데시네마 극장 3사의 스크린 대부분을 독과점하면서 관객이 한국 영화를 관람할 기회가 적었다. <인사이드 아웃 2>는 개봉 첫날인 6월12일 좌석점유율(전체 영화 좌석 대비 해당 영화가 배정받은 좌석 수)이 63.1%, 상영점유율(전체 영화 상영횟수 대비 해당 영화의 상영횟수)이 56.4%에 달했다. 극장에 걸린 영화의 절반 이상이 <인사이드 아웃 2>였다는 뜻이다. <데드풀과 울버린>도 개봉 첫날 좌석점유율 48.5%, 상영점유율 42.2%로 극장의 절반을 차지했다. 현재까지 좌석점유율 45%, 상염점유율 40% 이상을 유지 중이다.
스크린 독과점은 흥행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으로 이어진다. 영화의 국적을 가리지 않는 문제다. 올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영화 <파묘>(1191만명)와 <범죄도시 4>(1150만명)가 흥행할 때도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지적됐다. 영화사들은 극장이 특정 영화를 일정한 비율 이상 상영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스크린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극장들은 관객의 수요를 반영했을 뿐인데 과도한 규제라고 반박한다.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스크린 독과점 문제와 대안 마련 토론회’에서도 영화사와 극장 사이 열띤 공방이 오갔다. 이한대 싸이더스 대표는 “영화 제작하겠다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며 “스크린 상한제 등 최소한의 룰이 존재하지 않으면 한국 영화의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황재현 CGV 전략지원담당은 “극장의 스크린 쏠림 현상은 관객의 선택권을 반영한 것”이라며 “인기 없는 영화를 극장에서 많이 편성하면 오히려 문제”라고 반박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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