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엄마가 살인을 고백했다…가족 신화 폭로하는 ‘엄마의 왕국’
‘왕국 미용실’의 회전등이 돌아간다. 자기계발서 작가 도지욱(한기장)은 어머니인 미용사 주경희(남기애)와 함께 살고 있다. 도지욱이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실종 상태였다. 그런데 주경희에게 치매 증세가 나타나면서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동생인 목사 도중명(유성주)도 나타나 형의 행방을 캐묻는다. 어느날 주경희는 제정신을 잃고 도지욱에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내가 네 아빠를 죽였어. 잊지 마. 이게 사실이니까.”
지난 24일 극장 개봉한 영화 <엄마의 왕국>은 어머니가 숨겼던 가족의 비밀을 아들이 추적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주경희가 기억을 잃어갈수록, 도지욱은 기억을 찾아간다. 스릴러 장르의 문법을 빌려 ‘행복한 가족’이라는 신화가 얼마나 허약한지 폭로한다. 존재를 구성하는 기억을 잃어가는 병인 치매는 슬프다.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존재인 가족의 낯선 모습을 본다는 것은 공포스럽다. 극장을 나와서도 슬프고 무서운 정서가 마음에 축축하게 고이는 작품이었다.
주경희는 가족이라는 왕국을 만들고 도지욱에게 자신의 규칙을 강요하며 왕으로 군림해왔다. 도지욱은 자기주도적인 삶을 설파하는 자기계발서 작가이지만 사실 성인이 됐어도 어머니에게 잡혀 사는 신세다. 주경희는 위태로운 왕국을 거짓말로 지켜왔다. 불행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도지욱은 주경희가 가르친 주문을 외운다. “행복해, 우린 행복해” 주경희가 치매에 걸리면서 왕국은 내부에서부터 붕괴된다. 지하실처럼 음습한 분위기 속에서 유년 시절의 애틋하고 잔혹했던 기억들이 유령처럼 떠오른다.
<엄마의 왕국>의 반전은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쉽게 예측할 만하다. 반전의 충격에 집중하기보다 가족에 대한 질문을 강조하듯 반복적으로 던지며 결말까지 밀고 나간다. 한편으론 주인공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도지욱은 엄마의 왕국이 멸망한 자리에 왕국을 새로 건설한다. 자기계발서 <진실의 힘>의 후속작으로 <거짓의 힘>을 펴내고 비실비실 웃는다. 가족 의식이란 일종의 ‘공범 의식’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홍보 문구인 ‘웰메이드 미스터리’라고 불릴 만한 야심 넘치는 작품이다. 다소 과시적인 표현과 작위적인 대사가 아쉽지만 경제적인 연출력이 돋보인다. 저예산 때문에 한정적인 공간과 인물을 최대한 활용해 드라마의 밀도를 높였다. 관객을 깜짝 놀래키는 점프 스케어 장면도 제법 섬뜩하다. 클로즈업 숏으로 배우의 표정을 끌어당긴 장면들에선 연기력에 대한 확신이 느껴진다. 남기애는 갈수록 심해지는 치매 증상을 섬세하게 구현했고, 유성주는 실제 복화술까지 연습하며 광기어린 얼굴을 구축했다. 연극 무대에서 활약하다 처음 영화에 출연한 한기장까지 세 인물이 서사에 팽팽한 긴장감을 만든다.
<엄마의 왕국>은 이상학 감독의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졸업 작품이다. 장편영화 연출에 처음으로 도전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전작인 단편영화 <엄마는 마녀야> <오징어> <자화상> 등에서도 가족을 주제로 삼았다. 지난 15일 시사회에선 “가족이란 기억으로 유지되고 보호되는 집단이고 미스터리한 속성을 가졌다”며 “기억이 삭제되거나 왜곡됐을 때 가족이 흔들리는 공포와 서스펜스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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