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후보마저 죄다 ‘편법’…법은 서민만 지키나[김지현의 정치언락]

김지현 기자 2024. 7. 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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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연 대법관 후보자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업무보고를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2024.7.25/뉴스1
요즘 국회가 필리버스터다, 윤석열 탄핵 청문회다, 온통 난리죠. 그 탓에 그만 새로운 대법관 후보자분들의 면면이 묻힌 듯합니다. 인사청문회 주요 장면들을 좀 다시 볼까요.

7월 22일
더불어민주당 주철현 의원
“2002년에 후보자의 배우자께서 지인의 집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 아파트에 6개월 전입을 했다가 다시 이사를 했다.”

노경필 대법관 후보자

“당시 순천지원에서 근무하면서 온 가족이 순천에서 거주할 때였다. 몇 년 뒤면 다시 서울로 전출이 예정돼 있어서 어떻게 어디서 거주할지를 고려하면서 아마 배우자가 주소를 지인(집)으로 옮겼던 것 같다. 그런데 한 6개월 동안 있으면서 경제적 여건도 도저히 되지 않고 공직자로서 처신에 올바르지 못하다는 생각에 그냥 돌아왔다. 경제적 이득이 있었다거나 아이 교육에 문제가 됐다든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주 의원 “그렇다면 당시에 위장전입, 실제 살지 않으면서 배우자만 주소를 옮긴 것은 인정하시는 것이냐.”

노 후보자 “예,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다.”
(중략)

민주당 허영 의원
“당시 둘째 아들이 사실상 입학을 앞두고 있었던 시점 때문에 학교에 보내기 위해 주소 이전을 했던 것은 아니냐.”

노 후보자
“아니다. 그때 입학을 이미 하지 않았을까….”

허 의원
“둘째 아들은 입학 전 아니었나?”

노 후보자
“아, 입학 전이었던 것 같다.”

7월 24일
민주당 백혜련 의원
“후보자가 2021년 4월 5일부터 2023년 4월 4일까지 변호사시험(변시) 관리위원회 위원을 했다. 그리고 후보자 장녀는 서울대 로스쿨에 2020년 3월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변시에 응시한 날짜는 2023년 1월 10일~14일, 후보자가 변시 관리위원으로 활동할 때다. 변호사시험법에 따르면 변시 관리위원회의 소관 업무는 시험문제의 출제 방향 및 기준에 관한 사항, 채점 기준에 관한 사항, 시험 합격자의 결정에 관한 사항, 그러니까 변시를 총괄 관리하는, 기준을 세운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을 치는 사람과 관리위원이 관계돼 있을 때는 이해충돌의 여지가 있겠다. 그렇죠?”

박영재 대법관 후보자
“예 그럴 수도 있겠다.”

백 의원
“당연하다. 그래서 법무부에서도 관리위원 추천을 할 때 대법원에 ‘변시 관련 보안 사항 등을 접하게 되므로 그 직계비속이 3년 내 시험에 응시 예정인 경우에는 추천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박 후보자
“나는 전혀 몰랐고 그런 내용으로 안내를 받은 바 없다.”
(중략)

백 의원
“저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는 판사들 자녀 중에도 상당수가 로스쿨에 다니고 있다. 이게 얼마나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 입장에선 박탈감이 들고 공정성에 시비가 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냐.”

(중략)

민주당 김기표 의원
“이런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평생 법관을 해오셨잖아. 여러 재판을 할 때 이해충돌에 대해 많이 고민하셨을 것 아니냐. 그러면 누가 봐도, 전문 법관이 아니더라도, ‘내 직계비속이 로스쿨을 다니고 곧 변시에 응시를 할텐데, 내가 관리위원이 되는 것이 맞나’ 이 정도의 생각은 당연히 해봤을 것 같다. 해보지 않았다면 그게 더 문제겠다.”

박 후보자
“그런 생각을 저도 조금 하긴 했었다. (중략) 공정성에 의심이 갈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선 무겁게 받아들이고 송구하게 생각한다.”

7월 25일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
“일정한 소득이 없는 장녀가 아빠 추천으로 아빠에게 빌린 돈을 종잣돈 삼아서 초대박 주식에 투자하고, 다시 7억 원이 넘는 주택을 매입했다는 사실에 대해 일반 국민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숙연 대법관 후보자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저도 충분히 인정하고, 굉장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박 의원
“후보자가 대법관으로 임명되더라도 가장 걱정되는 지점은 과연 하루를 살아가는 일반 소시민의 삶을 이해하면서 민생을 위한 판결을 내려주실까 하는 데 있다.”
(중략)

민주당 백혜련 의원
“국고보조금을 받는 회사(금남고속)에서 후보자는 단 2년 만에 배당금으로 투자 수익을 뽑고, 10세도 되지 않은 자녀들도 그 많은 재산을 받아서 늘리는 상황이다. 그게 국민 보기에 어떨 것 같냐.”

이 후보자
“(주식을) 매수할 때는 시세 차익을 얻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중략) 요즘 아이들 돌일 때 금반지 대신 주식을 사준다. 아이들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고 저희도 마찬가지다. 이를 편법 증여로 폄하하면, 자녀들에게 주식을 사서 주는 부모들 마음은 다 그렇게 비난받아야 하는 것인지 제가 여쭤보고 싶다.”

백 의원
“이건 일종의 내부자 정보를 빼서 투자한 거나 다름없다. 이런 정보를 (알면), 2년 만에 원금이 빠질 수 있는 회사가 있다고 하면 누구나 한다. 후보자의 자녀들은 그런 특혜를 누린 것이다.”

정말 주옥같은 명대사, 명장면이 많았네요. 독자분들도 읽어 내려오면서 분노 게이지가 점점 올라가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대법관은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을 내리는 장관급 인사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대한민국 국법 질서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모든 소송의 유무죄를 판단해 줄 마지막 결정권자라고 부르죠. 그런 분들도 자식 앞에선 나약한 부모가 되나 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편법에 대해 ①나는 몰랐다 ②불법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노경필 후보자(60‧사법연수원 23기)는 2002년 강남 개포동 아파트 위장전입 문제를 따져 묻는 야당 의원에게 ①나는 몰랐다 논리로 대응했죠. 솔직히 납득은 안 됩니다. 후보자는 경제적 이득이나 자녀 교육상 혜택을 본 바는 없다고 했지만, 특별한 목적이 없었더라면 아직 서울 발령이 나기도 전인데, 굳이 남의 집에, 그것도 꼭 강남에 있는 남의 집으로 전입하진 않죠. 게다가 누구나 강남에 위장전입할 지인 집이 있는 건 아니니 일반 서민들은 꿈도 못 꿀 일입니다. 어쨌든 위장전입 자체가 불법이고요.

노경필 대법관 후보자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박영재 후보자(55‧사법연수원 22기)는 로스쿨에 재학 중인 딸이 변호사 시험(변시)을 치던 해 변시 관리위원으로 활동했던 일이 논란이 되자 뒤늦게 사과했죠. 그러면서도 시스템 탓을 했습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조차 “제가 보더라도 사실은 변시 관리위원회에 로스쿨 자녀를 둔 위원이 있다는 건 공정성 시비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건 법무부에서 개별적으로 더 확인했어야 하는 문제”라고 하자 “저도 동의한다. 시스템이 붕괴된 게 아닌가 생각하고 (대책이) 마련되는 게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참고로 박 후보자 딸은 지난해 첫 시험엔 탈락했고 올해 4월에 합격했다네요.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은 “후보자 따님이 효녀다. 작년에 합격했으면 박 후보자의 공정성에 엄청난 많은 비판이 제기될 수 있었던 상황”이라며 “결과적으로 후보자가 받는 큰 오해를 따님이 시험에 떨어짐으로써 많이 해소해 줬다”고 했더군요. 정말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네요.

박영재 대법관 후보자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법관 임명동의안 심사를 위한 인사청문회에서 잠시 얼굴을 만지고 있다. 뉴시스
사실 이숙연 후보자(56‧사법연수원 26기)에 비하면 이 두 분은 양반입니다. 이 후보자의 20대 딸은 만 19세이던 2017년 아버지 지인이 세운 화장품 개발 스타트업의 비상장주식 800주를 1200만 원에 샀습니다. 이 중 300만 원만 본인이 모은 돈이고 900만 원은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았다죠. 그러고는 6년 만인 지난해 5월 주식의 절반인 400주를 아버지에게 시세에 맞춰 3억8259만 원에 팔았습니다. 시세차익만 3억8000억 원, 투자금의 63배입니다. 이렇게 번 돈으로는 ‘갭투자’로 산 서울 용산의 다세대주택 투자금을 갚았다 합니다. 물론 이 투자금도 아버지가 빌려줬고요. 결국 아버지 돈으로 자기 주식과 부동산을 산 셈입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 역시 ‘①나는 몰랐다’ 논리로 방어에 나섰습니다. 그는 청문회에서 “제가 대전에서 근무하느라 집안에 소홀히 한 때에 배우자가 무리한 거래를 했다. (중략) 사실은 저한테 중요한 시기에 이런 일로 심려를 끼쳐 원망도 많이 하고 송구스럽기도 한데, 남편은 남편대로 저보다 나이도 많고 건강도 안 좋다. 자기 딴에는 늦게 본 딸자식에 대해 경제적으로 자립 기반을 마련해준다는 마음에 조급해서 이런 잘못을 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구구절절하지만 우린 그걸 ‘아빠 찬스’라고 부릅니다.

게다가 이 한 번뿐이 아니죠. 이 후보자의 딸과 아들은 아버지의 친형이 운영하는 회사 주식을 2006년 각각 300만 원씩 주고 샀다가, 작년 11월 4100만 원에 팔아 수천만 원의 차익을 남겼습니다. 이 후보자는 이에 대해선 ‘②불법은 아니다’로 맞섰습니다. 증여세는 다 냈다는 거죠.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서민들에게는 괴리감이나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허영 의원)라는 지적에 공감하는 평범한 서민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대법관 후보자라는 사람들마저 이런 지경인데, 대체 법은 누가 지키는가 싶습니다. 이번 청문회를 보면서 ‘불법만 아니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 ‘공공선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가족의 이익이 우선이다’, 이게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 집단의 기저에 깔린 사고방식이란 걸 재확인한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한편으론 어쩌면 이게 ‘뉴노멀’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동훈 이재명 조국, 원내 3당의 당 대표(또는 ‘곧 대표’)마저도 모두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치인들은 얼마든지 법을 찍어 누를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고, 기대를 저버리는 법조인들의 실망스런 모습에 국민들도 더 이상 법을 믿지 않습니다. 그렇게 법치주의가, 민주주의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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