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숍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나 [따듯한 동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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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우리나라 애견문화 확산에 '펫숍'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소형 품종 견들이 펫숍을 통해 국내에 소개됐고, 이렇게 작고 이쁜 동물들이 각 가정으로 분양된 시작점이기도 했다.
충무로역 근처에 위치한 '대한극장'에서 퇴계로 4~5가까지를 일컫던 애견거리에는 펫숍뿐만 아니라 동물병원, 애견용품점 등이 즐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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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환희 수의사·포인핸드 대표)
1990년대 우리나라 애견문화 확산에 '펫숍'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소형 품종 견들이 펫숍을 통해 국내에 소개됐고, 이렇게 작고 이쁜 동물들이 각 가정으로 분양된 시작점이기도 했다.
펫숍은 투명한 쇼윈도, 그리고 안에서 생활하는 동물들의 모습들로 대표된다. 지나는 사람들마다 투명한 창을 통해 보이는 작고 귀여운 동물들의 모습에 사로잡혀 발걸음을 멈춘다. 이내 넋을 잃고 바라보다 펫숍 안으로 들어가 동물들을 구경하게 된다.
서울 퇴계로에는 한때 펫숍이 줄지어 생겨나면서 '애견거리'라 불리는 구역까지 형성됐다. 충무로역 근처에 위치한 '대한극장'에서 퇴계로 4~5가까지를 일컫던 애견거리에는 펫숍뿐만 아니라 동물병원, 애견용품점 등이 즐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국내 애견산업의 성장으로 2000년대 초까지 폭발적인 인기가 이어졌다. 펫숍은 사업자등록증만 있으면 별다른 자격증이 필요 없었기 때문에, 늘어난 수요에 따라 펫숍도 우후죽순 늘어나기 시작했다. 번화가뿐 아니라 주택가 인근까지 확산됐다. 자고 일어나면 펫숍이 생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사람들의 삶 깊숙이 스며들면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방문해 강아지를 분양받아 키울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2000년대 이후로도 애견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법적인 규제 없이 무분별하게 생겨난 펫숍들로 인해 공급이 과잉됐다. 결국 펫숍의 매출 성장은 정체기를 맞게 된다. 펫숍이 잘된다는 말에 너나 할 것 없이 시작한 영세한 업체들이 과열 경쟁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나둘 문을 닫는 매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영세한 1세대 펫숍들은 점점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밀려나게 됐고, 펫숍은 새로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변화를 시작한다.
반려동물 생명 소중히 다루는 인식 가져야
2세대 펫숍은 공급 과잉 속에서 사람들이 기존에 보지 못했던 희귀한 품종의 동물이나 작은 동물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 찻잔에 들어갈 정도로 작다는 의미의 '티컵' 사이즈 동물을 분양하기 시작했다. 더 희귀하고, 더욱더 작아진 만큼 비싼 값으로 동물들이 팔려 나갔고, 이렇게 프리미엄을 표방하는 펫숍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공장식 애견 분양시장에는 어두운 이면이 있었다. 한 다큐멘터리가 열악한 환경의 번식장에서 무분별한 발정과 번식을 통해 애견을 생산하는 이른바 '강아지 공장' 문제를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마치 당연한 듯 물건처럼 동물을 사고팔았던 사람들 사이에 동물보호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고, 생명을 사지 말고 입양하자는 캠페인성 움직임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때 전성기를 누리던 충무로 애견거리는 현재 대부분 비어있거나 다른 업종의 매장으로 바뀐 지 오래다. 동물을 판매하는 펫숍 숫자도 점점 줄어 현재는 기업화된 소수의 3세대 펫숍들이 규모를 키우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런 3세대 기업형 펫숍들도 높아진 동물보호 인식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파양된 동물을 받아 재분양하는 동물요양원 사업을 내세우고, 뒤에선 여전히 동물을 판매하는 모순적이고 기만적인 영업의 모습을 띤다.
그만큼 동물을 물건처럼 판매하는 것이 더 이상 당연하거나 떳떳한 일이 아닌 것이다. 동물보호가 점점 중요시되는 반려동물 시대다. 동물을 물건처럼 판매하는 펫숍은 어느 순간 진화를 멈추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숙명을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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