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 감도는 레바논…미국·독일, 자국 시민들에 "당장 떠나라"
美 "위기 시작 전 출국해야…막히면 장기 대피 준비"
獨 "가능한 모든 옵션 활용해 떠나라…절대 장난 아냐"
전면전 막으려 외교전 총력…대다수 항공편도 중단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과 독일이 레바논에 거주하는 자국 시민들을 대상으로 서둘러 출국할 것을 촉구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인 헤즈볼라의 지난 주말 공격에 대응해 보복에 나설 것으로 예상해서다. 양국의 충돌이 커지면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 영사국 담당 레나 비터 차관보는 이날 레바논에 있는 자국 시민들을 대상으로 “위기 대응 계획을 수립하고 위기가 시작되기 전에 떠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지역 통신 및 운송 인프라가 손상되지 않고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 상업 항공기가 최선의 선택이지만, 상업 항공기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장기간 대피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도 비슷한 경고 메시지를 내놨다. 세바스찬 피셔 독일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레바논 내 자국 국민들에게 “현재 레바논을 떠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옵션을 긴급 활용하라”고 호소했다. 그는 “우리는 모든 독일인에게 아직 시간이 있는 동안 레바논을 떠나라고 촉구하고 있다. 재미 삼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역적 대격변(conflagration)이 발생하면 (레바논을 떠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27일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점령지인 골란고원 축구장에 로켓을 발사했다. 이 공격으로 어린이를 포함해 12명이 사망했다. 이에 대응해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있는 헤즈볼라의 무기 저장고 등 주요 시설을 밤새 공격하고, 추가 보복을 예고했다. 이스라엘 보안 내각은 28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에게 보복 방법 및 시기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당시 시리아로부터 점령한 곳이다. 이스라엘은 1981년 골란고원법을 제정해 자국 영토로 병합했으나, 국제사회에서는 영토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골란고원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레바논과 시리아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이 지역을 둘러싼 양측 간 무력 충돌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에 대한 보복을 최종 승인한 데다, 이스라엘의 최우방 국가인 미국이 대피 명령을 내렸다는 점에서 양국 간 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국경에서 연일 충돌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금까지 민간인 90명을 포함해 레바논에서 450명 이상, 이스라엘에서 군인 최소 21명을 포함해 45명이 사망했다.
전면전으로 번질 경우 중동 전역이 전쟁에 휩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헤즈볼라가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무장단체인 만큼, 이란이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전면전을 막기 위해 전방위 외교전에 나선 상황이다.
다만 한 외교 소식통은 FT에 “9개월 전 레바논이 이스라엘을 적대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강력한 공격이 예상된다”면서도 “전면전은 피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4월 이스라엘이 시리아 내 이란 영사관을 공격하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심야 공습했을 때에도 이스라엘이 대응 수위를 조절했다.
또다른 한 외교관은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을 전쟁으로 몰고 가지 않도록 대응책을 조정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균형을 맞추는 건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전운이 고조되면서 주요 글로벌 항공사들은 레바논 수도인 베이루트를 오가는 항공편을 중단했다. 독일의 루프트한자그룹은 다음달 5일까지 모든 일정을 취소했고, 그리스의 에게항공, 튀르키예항공, 에티오피아항공 등도 일부 항공편을 취소했다. 레바논 중동항공 역시 다른 중동 국가들을 향하는 일부 항공편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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