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노역’ 언급 없는 사도광산 등재에 동의, 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가”
“군함도 등재 때 약속도 안 지켰는데…日 역사 지우기에 한국 정부 동참한 것”
“尹대통령 ‘물잔론’, 우리가 채운 물 반 잔은 어디 갔나…한일 관계 오히려 역행”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 강제노역이 이뤄졌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한일 양국 정부 협의 끝에 일본이 당초 에도시대(1603~1868년)로 한정했던 반영 시기를 조선인 강제노역 시기를 포함한 전체 역사로 확대하고, 광산 인근에 '조선인 노동자 전시관'를 설치하기로 약속하면서 세계문화유산심의위원회(WHC) 위원국 '만장일치'로 등재가 이뤄졌지만, 그 어디에도 '강제동원'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어서다. 한국은 이번 등재에 21개국으로 구성된 WHC 위원국(지난해 11월 선출) 자격이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 철회 결의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지난 25일)를 이끌어 낸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은 "일본의 역사 지우기에 한국 정부가 스스로 동참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박 의원은 "오히려 지금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2015년에 이미 강제성에 대해 인정을 한 것'이라고 하면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대체 이게 어느 나라 정부의 이야기인가"라고 꼬집었다. 그는 조선 노동자 전시관 설치 등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일본이 취하기로 한 조치에 대해선 "겉으론 유네스코 권고 등을 지키는 척하면서 실제론 강제성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꼼수다. 속 빈 강정"이라고 평가했다. 박 의원이 이 같이 본 이유는 뭘까. 29일 오후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 의원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일, 강제성 표현 안 하기로 합의' 보도, 진실 규명해야"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양국 정부의 협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정말 심한 분노를 느낀다. 대한민국 정부의 처사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 이미 2015년 일본이 군함도(하시마섬) 등의 일본 메이지 근대 산업시설 23곳을 세계유산에 등재할 때도 문제가 됐었다. 핵심은 조선인에 대한 강제동원, 강제노역이다. 군함도 때도 유네스코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을 포함한 전체 역사의 맥락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라는 권고를 했다. 일본 정부가 그 때 약속을 해놓고 지켜지지 않던 상황에서 이번에 사도광산이 우리 정부 동의로 등재된 것이다."
이번 사도광산 등재에서 '강제동원'에 대한 언급이 없는 지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 지점이 가장 화가 난다. 2015년에 '강제노역'(forced to work)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일본 대표가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기록이 다 남아 있지 않나. 다만 그것에 대해 알린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24년 7월 사도광산 등재에선 일본이 강제노역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는데도 그 상태로 우리 정부가 동의를 했다.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 해법이라고 하는 것을 내놓으면서 온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고 선조들을 아프게 하고 유가족들의 자존심을 짓밟더니 이번엔 일본의 역사 지우기에 한국 정부가 스스로 동참했다."
일본 언론에선 '한일 정부가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보도도 나왔는데.
"그 문제는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우리 정부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는데 향후에 이 문제는 국회에서 철저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제가 민주당 간사에게 이 문제를 얘기해놓은 상태다. 철저하게 따져서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정부에서는 일본 정부가 '조선인 노동자 전시관' 즉각 설치 등 실천 의지와 성의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는 듯한데.
"사도광산에서 2km나 떨어진 박물관 한구석에 조선인 노동자들의 생활상과 같은 것들을 전시한 것뿐이고, 거기에 강제성이란 표현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의 권고 같은 부분을 지키는 척하면서 실제론 강제성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하는 꼼수를 쓴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속 빈 강정이다. 하지 않은 것이나 똑같다."
우리 정부가 군함도 때의 약속 미이행에 대해서도 문제제기가 미흡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왜 아직 일본 정부가 그것을 지키지 않는가를 반드시 따져야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이행되도록 하는 명확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앞의 것을 명확히 한 뒤에 이번 역시 어영부영 두루뭉술하게 하지 말고 반드시 이행 조치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2015년에 이미 강제성에 대해 인정을 한 것'이라고 하면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대체 이게 어느 나라 정부의 이야기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징용 보상과 관련해 '주권의 충돌 없이 보상받을 방안'(취임 100일 기자회견)이라는 취지로 이야기를 할 때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대통령이 그런 식으로 가이드라인을 두니 이번처럼 정부가 어이없는 태도를 취하는 것 아닌가."
이번 사도광산 등재 때 한국이 WHC 위원국으로서 참여했다.
"우리가 군함도 때의 일을 겪으며 같은 일이 예견됐음에도, 천우신조(天佑神助·하늘이 돕고 신이 돕는다)로 WHC 위원국이 됐는데도 표결이나 반대 토론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켜준 것 아닌가. 이게 바로 윤 대통령이 말한 '주권 충돌 없는' 방안인가. 이게 주권이 충돌할 일인가. 역사를 기록하지 않은 게 일본의 주권인가.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지난 7월1일에 국회 운영위원회가 열렸을 때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제가 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며칠 안 남았기 때문에 대통령실이 이 문제를 반드시 챙겨서 외교부가 제대로 대응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더니 정 비서실장께서 '정확하게 전달해서 제대로 되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또 제가 대표발의해 7월25일에 여당 의원 포함 출석 의원(225명) 만장일치 의결로 국회 차원의 결의문을 채택했는데 이런 부분들은 한 글자도 반영이 안 된 거다. 강한 유감을 표한다."
"과거사 해결 없는 미래지향은 양보 아닌 무능"
이번 일을 포함해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등 윤석열 정부가 일본에 대해 너무 저자세 외교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를 개선한답시고 '물잔에 우리가 먼저 반 잔을 채우면 일본이 나머지 반 잔을 채울 것'이라며 '물잔론'을 얘기했지 않나. 근데 우리가 채워줬던 반 잔의 물은 어디 갔는지 묻고 싶다. 일본이 그걸 홀딱 마셔버리고 지금 빈 잔을 또 내놓고 물을 또 채우라고 하는 격이지 않나. 아무리 우리 정부가 선의로 한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선의가 없는데 어떻게 이것이 관계개선으로 이어지겠나. 역사 문제에 대해 명확한 해결 없이 미래지향적 관계만을 위해 이렇게 가는 건 양보도 아니다. 무능한 거다. 이건 '외교의 실패'도 아니다. 애초부터 일본 뜻대로 해주려 작심한 거다."
과거사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가 어떤 태도와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보나.
"한국 정부의 대일 외교 정책은 원래 투트랙이다. 과거는 과거대로, 미래 지향적 관계는 그것대로 해야 하는데 적어도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성의 있는 태도의 노력이 있을 때 미래 지향적 관계를 위한 노력도 함께 전진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윤석열 정부는 역대 모든 정부가 가졌던 이러한 투트랙 전략 중에서 과거사 부분은 그냥 포기하고 나가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포장한다고 해서 한일 관계가 나아지겠나. 이는 오히려 지금까지 조금씩이라도 발전해왔던 한일 관계를 오히려 역행시키는 결과라고 저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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