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최초로 여성 미 대통령 될까…‘정체성 정치’가 변수

정의길 기자 2024. 7. 3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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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노지원의 글로벌 파파고 #해리스―돌풍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로 급부상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22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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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노지원의 글로벌 파파고는?

파파고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로 앵무새라는 뜻입니다. 유럽 특파원을 다녀온 노지원 기자가 묻고, 오랜 기간 국제 이슈를 다뤄온 정의길 선임기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국제뉴스의 행간을 알기 쉽게, 지저귀는 앵무새처럼 풀어드리겠습니다.

☞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지난 2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 후보직 사퇴 이후 주요 언론사와 여론조사 업체가 진행한 대부분의 여론조사 가상 대결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접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동률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 해리스 부통령은 잇따른 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오차범위 내로 따라붙으면서 후보 교체론이 적중했음을 보여줬다. 뉴욕타임스-시에나대 조사에서는 적극 투표층에서 47%-48%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바짝 따라붙었다. 월스트리트저널 조사에서도 47%-49%로 역시 오차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상대를 추격했다. 시엔엔(CNN)-에스에스아르에스(SSRS) 조사도 46%-49%로 오차범위 안 접전이다. (…) 폭스뉴스의 3대 경합주 조사에서 미시간과 펜실베이니아에서 상대와 함께 각각 49%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위스콘신만 49%-50%로 1%포인트 뒤졌다. 비경합주들의 승부가 2020년 대선과 같다고 가정할 때 민주당 후보는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 지대)의 이 3대 경합주만 지켜내면 승리할 수 있다. (…) 이런 결과 등을 두고 폴리티코는 “선거판이 완전히 뒤집혔다”고 평가했다. (한겨레 7월29일 보도)

Q. 와우,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 후보직을 굴러온 호박처럼 거머쥐더니 선전하네. 미국에서 부통령이 이렇게 대선 후보직을 승계한 경우가 있어?

A. 부통령이 대선 후보직을 해리스처럼 승계한 경우는 처음이지만, 대통령직을 승계한 경우는 적지 않지.

미국에서 부통령은 “사람이 고안해낸 제일 하찮은 직무”(존 애덤스 초대 부통령), “옛날에 두 형제가 있어서, 하나는 바다로 가고, 다른 하나는 미국 부통령으로 당선됐는데, 그 두 명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토머스 마셜 부통령), “따뜻한 오줌 한 양동이만도 가치 없다”(존 낸스 가너 부통령), “암소의 5번째 젖꼭지 정도의 가치”(해리 트루먼 부통령) 등의 평가를 받아왔어. 별 볼일 없는 자리였으나, 대통령이 유고가 되면 얘기가 달라졌어.

1841년 대통령에 취임한 휘그당의 윌리엄 해리슨이 100일 만에 폐렴으로 숨져서, 부통령인 존 타일러가 처음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했어. 당시 미국 정계는 휘그당과 민주당의 양당 대결이 격화되고 있었어. 그런데, 대통령이 된 타일러는 친민주당 정책을 펼쳐서, 재임 내내 소속당과 치고받았어. 그를 시작으로 모두 9명의 부통령이 대통령의 사망(8명), 사임(1명) 등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했지.

가장 마지막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부통령은 1974년 제럴드 포드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사임에 따른 것이지. 특히, 포드는 전임인 스피로 애그뉴가 탈세 혐의로 사임한 탓에 1973년 하원 원내대표였다가 부통령이 된 인물인데, 이듬해 대통령직까지 승계받는 미국 정치 역사상 최고의 무임승차 대통령이 됐어. 해리스보다도 운이 좋았지.

카멀라 해리스 당시 미국 상원의원(오른쪽 뒤)이 2020년 8월12일 미국 델러웨어주 윌밍턴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의 첫 기자회견을 듣고 있다. AFP 연합뉴스

Q. 부통령직은 여전히 별 볼일이 없는 자리야?

A. 이제는 그렇지 않아. 미국 부통령직은 1930년대 이후 중요성이 높아졌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부통령을 각료회의에 참여시키고, 안보 문제 등에서 역할을 부여했기 때문이지. 또, 대통령 선거가 치열해지면서, 러닝메이트인 부통령이 누구인지는 득표에 영향을 주기도 했어.

특히, 루스벨트 대통령이 2차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에 사망, 해리 트루먼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면서 부통령의 중요성을 보여줬어. 트루먼은 애초에 부통령 후보도 대타로 기용됐는데, 대통령직까지 승계하게 됐어. 누구도 그를 비중있는 대통령으로 보지 않았으나, 그는 2차대전 종전에 이어 소련과의 냉전에서 현대 미국의 대외정책을 규정하는 틀을 만드는 등 지도력을 보여줬어. 이 때문에 차기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장기집권에 대한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깨고 재선에 성공하는 기염도 토했지. 당시 시카고트리뷴은 1948년 대선 당일 트루먼의 낙선을 너무 확신한 나머지 토머스 듀이 공화당 후보가 당선됐다는 내용의 신문을 찍어내 역사적 오보를 내기도 했어. 트루먼은 이 신문을 들고 자신의 당선을 축하했지.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 때 딕 체니 부통령은 상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국내외 정책에서 영향력이 컸어. 20세기 이후 부통령은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고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이 탐내는 자리로 바뀌었어.

Q. 그럼, 해리스 부통령은 어때? 대선 후보직을 거머쥘 정도의 위상과 능력이 있는 거야?

A. 음… 부통령 선정에서 최고 기준은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를 보완할 ‘득표력’이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백인 남성이고, 민주당의 전통적 주류 정치인이라서 비백인 여성인 해리스가 선택된 측면이 크지.

1980년대 이후 민주당에서는 소수자는 최대 표밭이야. 즉, 인종, 젠더, 민족, 종교 등에서 소수자의 권리 주장과 확대는 민주당 선거 정치에서 주요 동력이 됐어. 일단 해리스의 능력과 무관하게, 비백인 여성으로서 미국 최대 주인 캘리포니아에서 상원의원이 된 것은 소수성을 대표하기에 아주 좋은 거지. 또 캘리포니아 최초의 여성 주 법무부 장관 겸 검찰총장을 거치는 등 여성으로서 최초의 타이틀을 여러 차례 기록한 데서도 일단 정치인으로서 능력은 있다고 봐야지.

하지만, 부통령 재직 때 보여준 업적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아. 바이든 대통령은 골치 아픈 이민 문제를 해리스에게 떠넘겼는데, 별 성과가 없었어. “모든 이민자에게 건강보험을 줘야 한다”는 발언을 해서, 역풍이 불기도 했어. 그는 2021년 6월 미국으로 몰려오는 이민자가 많은 나라 중 하나인 과테말라를 방문했을 때도 ‘미국-멕시코 지역 국경을 왜 방문하지 않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유럽에도 안 갔다”는 다소 엉뚱한 답변을 내놔 조롱의 대상이 됐어. 기자회견에서는 “오지 말라. 오지 말라. 미국은 계속해서 법을 집행하고, 우리의 국경을 지킬 것이다. 우리 국경으로 온다면 돌려보내게 될 것”이라고 말만 했지.

만약 바이든이 후보직을 유지하고 이번 대선까지 치렀다면, 민주당 안팎에서 해리스를 차기 대선 후보로 볼 사람이 많을지는 의문이야. 어쨌든, 바이든이 하차하면서 두 사람 이름의 선거자금을 쓸 수 있는 해리스의 승계가 합리적인 데다, 딱히 준비된 후보도 없는 상황이었어. 해리스의 후보직 승계는 호불호, 능력 여부와 상관없이 순리라고 할 수 있지.

10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현지 여학생 단체 회원들이 흑인 투표 활성화를 주제로 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캠페인에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Q. 바이든의 후보 사퇴 이후 해리스는 일단 여성, 그리고 흑인이라는 소수자 정체성을 강조하더라고. 그가 가진 ‘소수자 정체성’이 대선에서 유리할까?

A. 해리스의 선전은 일단 후보 교체에 따른 컨벤션 효과가 큰 거로 보여.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노쇠함을 보인 바이든의 사퇴로 다시 결집의 계기를 찾은 거지.

또 하나는 해리스의 등장으로 민주당은 최대 표밭인 소수자 집단의 동원과 결집의 강도를 높였지. 즉, 트럼프 대 해리스 구도는 남성 대 여성, 백인 대 비백인, 선주민 대 이민자, 보수 대 자유주의 등 인종, 젠더, 종교, 이념 등에서 대결 구도를 뚜렷이 하고 있어. 민주당으로서는 기존의 대도시 고학력 자유주의 성향 백인층에 더해 여성, 비백인, 이민자, 비기독교 등에서 결집과 동원이 활기를 보이는 거지.

따라서, 해리스의 정체성, 즉 비백인 여성은 그의 최대 무기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해리스의 정체성은 최대 약점이기도 해. 미국 사회는 1980년대 이후 정체성 정치의 대결 구도가 악화하여 왔기 때문이야.

Q. 그게 무슨 얘기야? 정체성 정치 구도가 악화해 해리스가 불리하다고? 당선이 유력했었던 여성 후보 힐러리 클린턴과 비교하면 어때?

A. 도널드 트럼프가 정체성 정치의 소산이야. 자기가 미국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사회경제적 쇠락에 분노, 좌절하고 있는 백인 중하류층은 그 책임을 이민자와 비백인의 ‘약진’에 돌리는 트럼프에게 열광하지. 반면, 1980년대 이후 미국의 진보 진영은 대중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운동이 침체하자, 소수자 집단에 주력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어. 인종, 젠더, 종교 등에서 소수자의 권리와 자유를 옹호하고 이들을 동원했어. 소수자의 입장과 권리를 옹호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은 진보 진영의 주류 이념이 되다시피 했지. 이는 사회문화적으로 보수적인 비도시 지역의 백인 중하류층들을 더욱 반민주당화 했고, 트럼프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져. 즉, 보수적인 중하류층 백인들이 이민자와 소수자에 대칭되는 백인 민족주의 정체성을 갖추기 시작한 거지.

이 때문에 민주당은 2000년 조지 부시 대 앨 고어 격돌 이후 대선에서 총득표수에서는 한 번만 빼놓고 모두 이겼어. 하지만 선거인단 수에서는 두 차례나 졌어. 2000년 대선에서 고어가 부시에게,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에게 총득표수에서 이기고도 선거인단 수에 밀려 패배했어. 왜냐하면, 중부 내륙 등 경합 주에서 백인 중하류층이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고 선거인단 수에서 우위를 보였기 때문이야.

특히, 흑인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 최초의 여성 대선후보인 힐리러 클린턴의 출마를 거치면서, 공화당은 백인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민주당은 소수자 동원 전략에 더욱 치중하게 됐어. 이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될지는 지켜봐야겠으나, 이런 정체성 대결 정치가 격화될 측면은 더욱 커졌지. 힐러리 클린턴이 이것 때문에 패배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해리스로서도 경계해야 할 거야.

22일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그의 배우자인 더그 엠호프가 선거 캠프 본부에서 직원들과 만나고 있다. AP 연합뉴스

Q. 결국 대선 승리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아닌가 싶은데…해리스가 이길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는지 궁금해.

A. 정체성 대결 구도 등으로 미국의 정치가 양극화되면서, 이번 대선도 누가 이기더라도 득표수 차이는 미미할 거야. 특히, 민주당으로서는 앞서 말한 대로 총득표수에서 이기고도 선거인단 표에서 질 가능성을 제일 우려하지.

민주당은 지역적으로는 캘리포니아, 뉴욕 등 인구가 많은 대형주 및 동서부 연안 대도시에서 유리하고, 공화당은 인구에 비해서 선거인단 수가 많은 비도시 내륙 지역에서 유리해. 주민 구성으로 보면, 민주당은 대도시의 고학력, 자유주의 성향의 백인에다가 비백인, 이민자 등에서 유리하고, 공화당은 비도시의 백인층에서 유리하지. 그렇게 보면, 유권자 수에서는 민주당이 약간 우위이지만, 선거인단 수에서는 장담하기 어려워.

미국 대선후보의 여론조사를 종합하는 리얼클리어폴리틱스 지수를 보면, 트럼프 대 해리스는 26일 현재 47.9% 대 46.2%로 나타나. 바이든이 사퇴하던 21일 트럼프 대 바이든이 47.9% 대 44.8%였으니, 민주당으로서는 상황이 나아진 거지.

하지만 현재 트럼프 대 해리스 여론조사 지지도는 바이든 사퇴의 계기가 된 지난 27일 대선 토론회 이전 지지율로 복귀한 것뿐이야. 실망했던 민주당 지지층이 돌아온 것일 뿐이란 거지.

물론 당분간은 해리스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보여. 민주당 공식후보로 확정되는 전당대회 등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줄 이벤트가 남아있지. 해리스도 이제 사실상 대선후보가 됐으니, 정책이나 정견을 더 가다듬고 후보로서 자질도 향상시킬 가능성이 크지.

트럼프와 해리스의 진검 승부는 아마 8월 민주당 전당대회와 9월의 대선 토론회 뒤가 될 것 같아. 해리스의 컨벤션 효과가 끝나고, 트럼프도 해리스를 공략할 새로운 전략을 만들 테니까.

9월이 지나서도 큰 이변이 없다면 두 사람 지지율은 아마 2%포인트 내외에서 들락거릴 공산이 커. 우호적 부동층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투표에 나서느냐, 특히 경합 주인 애리조나, 네바다,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에서 부동층이 어디로 움직이냐가 이번 선거의 관건이 될 거야.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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