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지키는 이들을 위해"…우크라, 펜싱서 감격의 첫 메달

김경태 2024. 7. 3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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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펜싱 간판 하를란, 최세빈 꺾고 여자 사브르 동메달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의 첫 올림픽 메달
우크라이나 선수 올하 하를란/사진=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검객 올하 하를란이 30일(한국시간) 파리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접전 끝에 우리나라의 최세빈(전남도청)을 15-14로 제압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하를란의 동메달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를란의 동메달은 2022년 2월 러시아가 영토를 침공한 이후 우크라이나가 치른 첫 번째 올림픽에서 거둔 첫 번째 메달입니다. 우크라이나는 2년 5개월이 넘은 지금까지도 러시아와 전쟁 중입니다.

펜싱 경기가 열리는 그랑 팔레의 공동취재구역에서 이날 만난 우크라이나 기자 이리나 코지우파는 "정말로, 너무나 소중하다. 그 사태 이후 우리가 딴 첫 번째 메달이다. (우리에겐) 금메달과 같다. 아니, 금메달보다도 값지다"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신이 딴 메달의 가치를 안 하를란도 동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감격에 차 오열했습니다. 무릎을 꿇더니 우크라이나 국기가 그려진 마스크를 벗고 자신이 승리를 거머쥔 경기장 바닥에 입을 맞췄습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겪은 수난을 아는 관중은 1만 3,500㎡가량 면적을 자랑하는 그랑 팔레 중앙홀이 떠나갈 듯이 박수치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하를란은 우크라이나의 '국민 검객'이다. 2008년 베이징,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단체전에서 금, 은메달을 획득한 바 있습니다. 2012년 런던과 2016년 리우 올림픽 개인전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는 '악수 거부' 사건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를란은 지난해 7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64강전에서 러시아 출신 선수인 안나 스미르노바를 15-7로 물리쳤습니다.

경기 종료 후 마주 선 스미르노바가 다가가 악수하려 했으나, 하를란은 자신의 검을 내민 채 거리를 두며 악수를 피하고 경기장을 벗어났습니다.

규정상 의무로 명시된 악수를 하지 않은 하를란은 실격 처리됐습니다.

이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 실격으로 파리 올림픽 출전에 필요한 세계랭킹 포인트를 딸 기회가 사라진 하를란에 올림픽 출전을 약속했습니다.

코치와 기뻐하는 올하 하를란/사진=연합뉴스

이전까지 개인전에서는 동메달만 딴 하를란은 최세빈에게 5-11까지 끌려가며 이번 대회 메달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으나, 침착하게 기지를 발휘해 15-14로 역전을 이뤄내면서 우크라이나에 귀중한 동메달을 가져왔습니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에 하를란이 나타나자, 우크라이나 기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격렬히 환영했습니다. 하를란도 함께 소리치며 감격의 순간을 만끽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언론뿐 아니라 역사적인 순간을 취재하려는 전 세계의 기자들이 몰려 잠시 통행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공동취재구역이 꽉 막히기도 했습니다.

환희에 찬 하를란은 "(이번 동메달은) 정말 특별하다. 믿을 수가 없다"며 "조국을 위한 메달이고,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사람들을 위한 메달"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여기 오지 못한 선수들, 러시아에 의해 죽은 선수들을 위한 메달"이라며 "여기로 온 선수들에게는 참 좋은 출발로 느껴질 거다. 조국이 전쟁 중인 가운데 (대회에) 출전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동메달이 금메달만큼 가치 있다고 한 코지우파 기자처럼 하를란도 "모든 메달이 금메달과 같다. 무슨 메달인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건 금메달"이라고 힘줘 말했습니다.

시상식을 마친 후 공식 기자회견에 참여한 하를란은 여기서도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공개적으로 발언했습니다.

하를란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전쟁과 관련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신경 쓰고 있다. 그건 힘든 일"이라며 "우리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다 고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 메달이 조국에 기쁨, 희망을 가져다주길 바란다"며 "우크라이나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편, 이번 하를란의 발언이 스포츠가 아니라 실제 전쟁에서 자국의 선전을 응원하는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어 '정치적 표현'의 범주에 들지는 지켜볼 대목입니다.

IOC는 선수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불허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IOC 헌장 50조는 시위나 정치적·종교적·인종적 선동을 올림픽 경기장과 시설 등에서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스포츠의 정치 중립을 강조하는 조항입니다.

[김경태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ragonmoon20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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