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5000억대 공모 사기인가, 대기업 횡포의 희생양인가
발주 끊기자 ‘나몰라라’…SK하이닉스 “파두에 발주물량 보장한 적 없다”
(시사저널=이석 기자)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이하 특사경)은 지난 7월4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SK하이닉스 서울거점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 지난 4월에 이은 두 번째 압수수색이다. 재계에서는 뻥튀기 상장 의혹을 받고 있는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팹리스) 파두에 대한 금감원 조사가 본격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 압수수색으로 '파두 사태' 재조명
파두는 지난해 8월7일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코스닥 입성에 성공했다. 공모가는 3만1000원이다. 기업가치만 1조원을 상회했다. 낸드플래시 메모리(SSD)의 핵심인 컨트롤러 기술력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파두는 2023년 실적 추정치로 1202억원의 매출과 1억원의 영업이익을 제시했다. 파두가 2021년부터 SK하이닉스를 통해 자사의 시스템 반도체인 SSD 컨트롤러를 장착한 완제품을 메타(옛 페이스북) 에 공급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보였다.
그런데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파두는 2분기 매출 5900만원에 영업손실 152억원, 3분기 매출 3억원에 영업손실 148억원을 기록했다고 그해 11월 공시했다. 시장이 크게 동요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실적 부풀리기를 통한 상장사기 의혹이 불거졌다. 금감원은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당사자인 파두는 물론이고, 상장 주관사인 NH투자증권 등과 주요 거래처인 SK하이닉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익명을 요구한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파두 매출 단절의 원인은 SK하이닉스에 대한 납품 중단이 원인이다"면서 "파두가 매출 하락을 예상하고도 추정 실적을 부풀려 상장을 강행했는지 여부가 조사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한때 파두가 SK그룹에 밉보인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파두는 남이현 대표 등 서울대 메모리 스토리지 구조 연구실 출신 박사 4명이 2015년 설립한 회사다. 설립 초기부터 인텔과 메타 등 글로벌 테크기업에 기술 인증을 받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증권가에서 주목한 인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위로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의 남편인 윤도연 전 모레 대표였다. 파두 설립 초기부터 그가 사업개발팀 멤버로 참여했고, SK그룹이 80억원을 투자한 것을 연결 지어 해석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최근 SK하이닉스와 파두의 거래 단절을 두고서도 증권가에서 "파두가 SK그룹에 단단히 찍힌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돈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소문은 SK나 파두 내부 사정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라는 지적이다. 윤 전 대표의 경우 SK가 파두에 투자한 이후인 2017년 입사한 데다, 그나마 3년 뒤인 2020년 퇴사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파두의 SSD 컨트롤러 기술력은 이미 SK하이닉스를 넘어선 상태다. SK하이닉스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거액을 투자해 자사 SSD 컨트롤러에 대한 메타의 기술 인증을 시도했지만 여러 차례 거절당했다"면서 "파두가 없었다면 SK하이닉스는 메타에 제품을 납품할 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파두 없었다면 메타 못들어가"
시사저널이 입수한 SK하이닉스 내부 문건에는 그 동안의 히스토리가 자세히 언급돼 있다. 이 문건 내용과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SK하이닉스는 자사 SSD 컨트롤러를 사용한 Gen3 SSD(PE8110)의 인증을 받기 위해 지난 2019년부터 메타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데이터 손실 현상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메타 측과 협상을 벌였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메타는 2020년 4월 SK하이닉스 SSD와 컨트롤러에 대한 평가 중단을 선언했다. 당시 메타는 SK하이닉스에게 보낸 이메일 통보문에서 "메모리의 데이터 손실 위험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내부 논의 끝에 데이터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는 (SK하이닉스 SSD)의 평가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메타는 자사 기술 인증을 통과한 파두를 SK하이닉스에 추천했다. SK하이닉스는 파두의 Gen3 SSD 컨트롤러를 납품받아 메타에 SSD 완제품을 납품했다. 뿐만 아니다. 파두는 SK하이닉스에서 제공받은 낸드플래시 메모리에 자사의 4세대 SSD 컨트롤러를 장착한 SSD 완제품을 메타에 직접 납품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SK하이닉스는 대만 TSMC의 생산 권리를 파두에게 일부 넘겨줬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의 경우 고객을 가려받기로 유명하다. 반도체 호황기 때는 글로벌 기업도 예약 경쟁을 벌여야 했다. 파두가 TSMC에 의뢰해 SSD 컨트롤러를 생산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SK하이닉스는 미리 확보해 둔 TSMC의 생산권리 중 일부(60만개 분량)를 파두에게 추가로 넘겨줬다. 파두의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일각의 지적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SK하이닉스와 파두의 협력은 국내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대표적인 협업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파두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파두는 이때 SK가 발주한 구매오더(PO)를 바탕으로 실적 추정치를 작성했다"면서 "하지만 2023년부터 SK하이닉스가 오더를 취소하면서 실적을 맞출 수 없게 된 것이 파두 사태의 진실이다"고 설명했다.
거래 단절 알면서도 상장 강행했는지가 관건
물론 SK하이닉스 측의 주장은 달랐다. "TSMC 생산 권한 양도가 파두의 수주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SK하이닉스의 한 관계자는 "파두와 협의해 SSD 컨트롤러를 생산할 수 있는 웨이퍼 캐파를 양보한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하지만 캐파 양보가 물량 수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는 어떤 협력업체와도 이와 같은 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결국 공은 금감원의 손에 넘어가게 됐다. 거래가 갑자기 끊길 줄 알면서도 파두가 상장을 위해 예상 실적을 부풀려 발표했는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금감원 특사경이 이례적으로 두 차례에 걸쳐 SK하이닉스를 압수수색한 것도 이 때문이다. 파두의 실적 부풀리기나 뻥튀기 상장 의혹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발주처인 메타나 최대 고객사인 SK하이닉스의 거래 형태를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스타트업이 대기업 횡포의 희생양이 된 것은 아닌지 우려를 표시하기도 한다. 업계 관행상 SK하이닉스가 구매 예측을 통해 120만개를 주문한 만큼,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에도 현재 이런 문제를 지적한 탄원서가 여러 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반도체나 벤처 업계는 물론이고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파두 잇단 수주 낭보에도 주가는 제자리걸음 왜?
전문가들 "느리지만 실적 회복…고객사 점유율 확대가 관건"
파두의 뻥튀기 상장 의혹은 향후 금감원 조사에서 가름날 것으로 판단된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파두가 진짜 기술력이 있는지, 기술력이 있다면 언제 실적이 회복될지 여부에 쏠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파두가 2분기에만 해외 낸드플래시 메모리 제조사와 3건의 공급계약을 체결했다는 발표가 우선 눈에 띈다. 금액으로 치면 307억원 규모로, 지난해 매출(225억원)을 넘어선 상태이기 때문이다. 매출이 가장 높았던 2022년(564억원)과 비교해도 이미 절반을 넘어섰다.
파두는 지난 5월 말 중국 SSD 전문업체와 SSD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계약 상대방의 영업상 기밀유지 요청에 따라 실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파두는 연말까지 192억원 규모의 제품을 공급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와 메타 의존도에서 벗어나 매출 다변화를 꿰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낸드플래시 제조사인 웨스턴디지털과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파두는 지난 6월14일과 7월9일 해외 낸드플래시 제조사로부터 68억원 규모의 SSD 컨트롤러를 수주했다고 공시했다. 고객사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웨스턴디지털로 추정된다. 파두는 향후 웨스턴디지털과 함께 기업용 SSD에서 사용되는 차세대 기술은 FDP 공동 개발에도 착수할 계획이다. 오는 8월 초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리는 '2024 FMS(Future of Memory and Storage)'에 윤곽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지효 대표는 개막일은 6일(현지시간) 웨스턴디지털 마케팅 부사장인 에릭 스패넛 등과 함께 공동 기조연설에 나설 예정이다.
시장 상황도 나쁘지 않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계 기업용 SSD 매출은 37억5810만 달러(한화 5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AI 서버 관련 수요가 증가하면서 전 분기보다 62.9%나 늘어났다. 수요가 늘어나면서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올해 2분기에만 기업용 SSD 가격이 전분기 대비 20% 이상 상승했다. 이 같은 추세가 향후 계속 이어질 것으로 트렌드포스 측은 전망하고 있다.
이런 호재에도 불구하고 파두의 주가는 여전히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7월23일 현재 파두의 주가는 1만8320원을 기록했다. 공모가(3만1000)의 절반 수준까지 주가가 하락한 상태다. 최근 계속된 수주 발표에도 투자자들은 희의적이다. 누리꾼들은 포털 종목 토론방에서 '껌장사 시작'이라는 비아냥성 글을 올리고 있다.
뻥튀기 상장 의혹에 대한 투자자의 실망 여론이 그만큼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금감원이 SK하이닉스를 두 번째 압수수색한 지난 5일 파두 주가는 4% 이상 급락했다. 다음날 반대 매수로 주가가 일시적으로 회복했지만, 이후 5거래일 연속 주가가 하락하면서 최후 지지선으로 평가받는 2만원선이 붕괴됐다.
전문가들은 파두의 실적 개선을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NH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파두의 주력 제품인 SSD 컨트롤러 사업을 하는 곳은 전세계적으로 삼성전자와 실리콘모션, 마벨, 파이슨 등 손에 꼽힌다. 최근 낸드 업황 개선 기대감과 함께 느리지만 실적이 회복 중인 파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면서도 "실적 회복을 위해서는 파두 주요 고객사의 의미있는 투자 재개와 신규 고객사에 대한 성공적인 납품, 고객사 점유율 확대 등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티몬·위메프’ 두 손 들면 영원히 환불 못 받을까? - 시사저널
- 측근이 본 ‘인간 한동훈’은 “차가운 칼…사안엔 유연, 사람엔 유연하지 않아” - 시사저널
- “당일 수리가 안돼서요”…고객 휴대전화 속 ‘나체사진’ 몰래 본 서비스센터 직원 - 시사저
- 법정서 울먹인 김혜경 “남편, 비주류로 많은 탄압…‘돈 없는 선거’ 욕 먹어” - 시사저널
- 백종원의 호소 “이건 ‘기업 죽이기’…2785곳 점주들 생명줄 달렸다” - 시사저널
- ‘슈퍼개미’ 복재성 100억 수익의 이면…‘치킨 상장쇼’ 벌였다 - 시사저널
- 이준석 “조국 딸과 왜 결혼했냐 따지는 어르신 많아” - 시사저널
- “제발 합의 좀” 5세 아이 학대한 태권도 관장이 유족에 꺼낸 말 - 시사저널
- 쯔양이라서 제기된 두 가지 이슈 - 시사저널
- ‘왜 바지가 커졌지?’…나도 모르게 살 빠지는 습관 3가지 -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