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김밥, 삼겹살, 상추쌈을 사수하라 [편집국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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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4일 용산 대통령실 야외 정원 파인그라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의 만찬 메뉴 중에도 '김치김밥'이 들어가 있었다.
저녁 퇴근길 지하철에 앉아 산재 사망 노동자의 마지막 식사였던 '김치김밥'과, 대통령실이 주최한 여당 전당대회 뒤풀이 만찬 식탁에 오른 '김치김밥'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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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먹고사는 일’ 원고를 넘긴 직후 바로 대통령실 만찬 뉴스를 봤다. 이번 호에 실린 은유 작가의 글 “영희는 ‘부챗님’이다, 먹이는 일에 여한 없는”은 〈시사IN〉이 녹색병원과 함께 시작하는 연재물의 첫 회다. 먹고사는 이야기는 음식 이야기인 동시에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산재 사망 유가족, 급식 노동자, 청소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이 인터뷰 대상이고 그들이 먹는 음식이 기사의 주요 글감이다. 이번 호에 소개된 첫 음식은 ‘김치김밥’이다. 산재 사망 유가족 김영희씨가 평생 동반자였던 고 정순규씨의 마지막 아침 도시락으로 싸준, 정씨가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추락해 숨지기 전 ‘다행히도’ 깨끗하게 비운, 그래서 남편 대신 ‘락앤락’ 통만 돌아온.
7월24일 용산 대통령실 야외 정원 파인그라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의 만찬 메뉴 중에도 ‘김치김밥’이 들어가 있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끝난 다음 날 저녁 식사였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전한, ‘윤 대통령이 하나하나 직접 골랐다고 한’ 만찬 메뉴는 다음과 같았다. 삼겹살, 돼지갈비, 모둠 상추쌈, 빈대떡, 김치, 미역냉국, 그리고 김치김밥.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삼겹살은 정부와 여당, 대통령실을 상징” “모둠 상추쌈은 당정이 모두 모여 화합한다는 의미” “막역한 사이에서 먹는 대표적인 한국 음식으로 격의 없이 소통하고 대화해나가자는 의미”라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멘트가 뒤따랐다.
저녁 퇴근길 지하철에 앉아 산재 사망 노동자의 마지막 식사였던 ‘김치김밥’과, 대통령실이 주최한 여당 전당대회 뒤풀이 만찬 식탁에 오른 ‘김치김밥’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생각했다. 김 위에 밥과 김치를 펼치고 돌돌 말아 만든 음식의 이름은 같지만, 그것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참 다르게 느껴졌다. 김영희씨 인터뷰에 담긴 ‘생업’ ‘죽음’ ‘차별’ 그리고 대통령실에서 저녁 메뉴를 빗대 말한 ‘화합’ ‘서민’ ‘소통’의 간극에 대해서도 곱씹었다.
음식의 맛과 그것을 느끼는 인간의 마음에는 보편성이 있겠지만, 누가 무슨 환경에서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음식의 의미와 정서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가난한 취업준비생이 주머니 속 마지막 동전을 털어 사먹는 포장마차 어묵과 재벌 총수가 정장을 입고 카메라 플래시 앞에서 먹는 어묵이 다르듯, 삼겹살과 김치김밥이라는 음식에 아무리 ‘서민적’이라는 장식을 두른들 대통령실 만찬장에 깔아놓은 그 음식들이 진짜 서민들에게 위로를 전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허기는 삶의 위협 요소인 동시에 삶의 원동력이다. 우리는 일하러 가기 전 힘내라고 먹고, 일 끝내고 수고했다고 먹는다. 일하느라 배고프고, 일하다가 더러 다치고 때로 죽는다. ‘먹고사는 일’ 연재는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캠페인(taeilhospital.org)의 일환이다. 배고픈 사람들이 잘 먹고, 덜 다치고, 덜 죽게 되는 세상을 꿈꾼다. 전태일 열사가 가장 마지막에 한 말이 “배고프다”였다. 김치김밥과 삼겹살과 상추쌈을 권력에 굶주린 자들에게 뺏길 순 없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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