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제도는 왜 생겼을까? [새로 나온 책]
헌법의 순간
박혁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
“헌법이 처음 생겨난 그 순간으로 향하는 시간 여행.”
제헌절은 1948년 7월17일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1948년 6월23일 헌법 초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다. 그로부터 20일 동안 제헌의원 198명은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그 기록은 당시 국회 회의록에 생생히 담겼다. 우연히 회의록을 들여다본 저자는 그 생동감에 깜짝 놀랐다. 헌법 초안을 두고 상대를 설득·논박하는 언변과 논리를 접하고서 그가 떠올린 표현은 이것이었다. ‘정치의 향연.’
저자는 20일 동안 가장 큰 논란이 된 조항과 그에 얽힌 이야기 14개를 담았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두고 벌어진 논쟁, 국무총리 제도가 생긴 까닭 등 지금은 그러려니 익숙하게 넘어갔던 조항과 제도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밝힌다.
저 너머엔 다른 꽃이 필까
현윤애 그림, 박수현 글, 르네상스 펴냄
“여기서 묵묵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책 작가 현윤애씨는 ‘여행 떠나듯’ 전남 구례로 귀촌했다. 10년 넘게 구례에 살면서 새 취미를 얻었다. 호젓한 구례구역에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기, 섬진강 둑길 산책하기, 구례 오일장 단골집에서 수다 떨기 등. 언젠가부터 작은 스케치북과 펜을 챙겨 그 풍경과 순간을 그리기 시작했다. 글 저자 박수현씨는 구례가 고향이다. 중학교 때까지 구례에 살다가 타지로 가 청소년 책을 쓰고 번역했다. 몇 년 전에 돌아온 구례는 더 이상 어릴 적 ‘떠나고 싶었던 곳’이 아니었다. 돌아와 보니 조그맣고 조용하고 새롭고 멋진 곳이었다. 미처 몰랐던 풍경과 모습을 포착한 현씨의 그림에 박씨가 글을 덧붙였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구례 그림 에세이’다.
일본사 시민강좌
이재석 외 지음, 연립서가 펴냄
“공자와 맹자를 포로로 만들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공맹의 도.”
일본은 여전히 한국 정치에서 공수(攻守)의 위력적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의 심화 국면에서, 양국 사이의 적대 및 연대 가능성을 냉정하게 계산하려면, 일본을 알 필요가 있다. 그 출발점으로 역사만큼 적당한 장르가 있을까. 이 책은 일본사 전문가 10명의 대중 강연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이미 다수 출간되어 있는 ‘일본 통사(시대순 역사 서술)’와 달리 고대 양국 관계사, 일본의 유교와 기독교, 메이지유신, 식민지배와 집단학살 등 특정 주제를 확장하면서 다른 시대와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식으로 서술되어 한층 흥미롭게 읽힌다. 시민 눈높이에 맞춘 강의 내용과 190여 컷에 이르는 컬러 이미지들 덕분에 책장을 빠르게 넘길 수 있다.
수용, 격리, 박탈
신지영 엮음, 김보람 외 옮김, 서해문집 펴냄
“2023년 12월31일 기준 한국의 난민 인정률이 1.49%에 불과했음이 다시금 생각났다.”
수용소가 있는 세계에 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책은 동아시아의 식민지배, 냉전, 분단, 한국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거치며 만들어진 수용소와 수용소화된 장소를 들여다본다. 수용소는 ‘정상’에서 벗어난 존재를 보이지 않게 가둔다. 동시에 이 같은 낙인이 합리적이며 합법적이라고 여기게 만든다.
한국·일본·타이완의 연구자·활동가 15명이 내놓은 묵직한 논문 15편을 엮었다. 물리적 수용소가 아니더라도 이 사회 전체가 곧 수용소였던 한센인의 사례와 무기한 구금이 ‘보호’로 둔갑한 외국인 보호소 등 100여 년의 시공간을 넘나든다. 수용소가 ‘피난소’가 되는 아이러니한 경험도 흥미롭다. 특정 존재에 대한 배제와 폭력을 묵인하는 구조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
“나는 견뎌내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으니.”
웹툰의 시대라지만 종이 만화에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면 스크롤이 아니라 ‘칸’이라는 제한된 공간 덕분 아닐까.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을 넘기다 보면 칸은 한계가 아니라 가능성임을 감탄하며 깨닫게 된다. 표제작을 비롯해 ‘100 Brix’ ‘진지하고 싶지 않은 혜지씨’ ‘공룡의 아이’ ‘녹슨 금과 늙은 용’까지 단편 만화 다섯 편을 묶었다. 다시 읽을 때마다 좋은 장면과 순간이 새로 발견된다. 특히 ‘인생이 시험의 연속 같다’고 생각해본 적 있는 이들이라면 마음을 포갤 수밖에 없는 작품들이다. 어떤 작품에서는 내 삶의 조각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삶의 그림자가 남긴 상처의 예리한 단면을 묵직하게 훑는 장면들이 서늘한 동시에 짜릿하다.
꽃을 위한 미래는 없다
브래디 미카코 지음,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펴냄
“리버럴한 척하기는.”
‘펑크 음악이 너무 좋아서’ 무작정 영국으로 떠나자고 결심한 어린 소녀가 있었다. 기대와 달리 ‘이주민 출신 남편’과 ‘빈민가’에 사는 ‘일본 국적’ ‘여성 노동자’라는 위태로운 정체성을 지켜내느라 벅찬 세월을 보냈다. 마침내 마흔 살이 된 때 그 ‘어린 소녀’가 반목과 모순으로 가득 찬 영국의 밑바닥을 생생히 기록했다. ‘외부인’의 시선에서 쓴 사회 비평이라는 점만으로도 재미있지만, 친절한 듯 냉소적인 영국식 유머가 읽는 맛을 더욱 돋운다. 치솟는 런던의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다가, 자녀의 취학에 맞춰 ‘학군 좋은 동네’로 이사를 계획하는 영국인에 대한 묘사는 20여 년 전 영국 이야기라고 하기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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