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다시 겪을까…유럽, 위기 대응 TF까지 가동
전략적 자율성 준비하지만 발걸음 맞을지 의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집권 대비가 필요하다.
트럼프 집권 1기(2017년 1월~2021년 1월) 당시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방위비 인상 압박과 관세 폭탄으로 ‘악몽의 시간’을 겪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 회원국들은 최근 이런 생각을 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들과 접촉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 특유의 예측 불가능성을 고려하면, 트럼프 재집권 때 대유럽 정책 방향을 대비하는 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유럽은 고령 리스크로 민주당 대선 후보에서 하차한 조 바이든 대통령 대신 후보로 떠오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약진에서 기대를 걸기도 하지만, 물밑에선 대부분의 유럽 정부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에 대비해 공화당과의 관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 외교부와 주미 독일 대사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가 독일에 미칠 영향과 대응을 모색하기 위해 비공식 위기 그룹을 만들어 가동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또한 미국 텍사스, 조지아주 등 독일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지역을 중심으로 공화당 주지사와 의원들을 만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 영향 촉각
다만, 공화당과 민주당 중 어느 쪽에서 차기 대통령이 배출되건 유럽은 모두 중국과의 경쟁에 초점을 맞춘 미국의 외교 정책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나라와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유럽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유럽연합(EU)의 싱크탱크인 유럽외교협회(ECFR)는 지난 19일 자료를 내어,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갈등에서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동맹들을 필요로 했다”며 “해리스 부통령에게도 이런 방식이 기대된다. 중국을 향한 서방의 공동 접근 가능성은 공화당보다 민주당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전망했다. 유럽연합은 지난 5일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7.6%의 관세를 부과하는 잠정 조처를 취하는 등 중국에 최근 공세적이다. 바이든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21년 미국과 무역기술위원회(TCC)를 출범시켜 대중국 압박 정책을 짜는 틀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할 경우에는 상황이 더 복잡해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면 무역기술위원회의 존속 자체가 흔들리거나, 유럽을 압박하는 용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6일 공개된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 60~100% 그리고 모든 국가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했다. 동맹국 상품에도 광범위하게 관세를 추가 부가하겠다는 이야기다. 트럼프 재집권 때 유럽은 미국과의 긴장도 커지면서 중국의 무역 보복 리스크까지 함께 감당해야 할 수 있다.
이런 시나리오로 피해가 가장 크게 예상되는 나라는 유럽에서 중국을 상대로 가장 많은 수출을 하고 있는 독일이다. 독일의 대중국 상품 수출액은 2023년 기준으로 973억300만유로로 유럽연합 회원국 중 2위인 프랑스(250억1700만유로)의 3배가 넘는다. 베엠베(BMW), 벤츠 등 중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중대형 자동차 브랜드를 보유한 독일은 지난 16일 유럽연합의 중국산 전기차 고율 관세에 대한 사전 투표 때 기권했다. 기권은 실질적으로 반대 표시다. 당시 사전 투표는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로 비공개로 진행했으며, 정식 투표는 오는 11월에 열린다.
이런 사정 때문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지난 4월 방중한 데 이어 지난달엔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이 중국을 찾는 등 긴장 완화에 나서기도 했다.
독일뿐 아니라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지난해 4월 대규모 경제협력단을 이끌고 중국에 와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했다. 지난해 말 중국의 만류를 뿌리치고 중국의 대외 핵심 사업인 ‘일대일로’를 탈퇴했던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경제협력단을 이끌고 28일 중국을 방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으로 유럽이 받는 압박이 커진다면 반작용으로 유럽 일부 국가에선 중국과 타협·협력할 공간이 커질 수도 있다.
‘휴면기에 접어든 나토’ 정책 떠오르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강경한 ‘고립주의자’인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 상원의원을 택하면서, 미국과 대서양 안보의 중심축인 나토 회원국들의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나토에 대해 회의적인데다, 나토와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더 강한 어조로 반대한 밴스 의원 부통령 후보 지명은 미국 우선·고립주의 정책이 더 노골화될 것임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지난달 트럼프 캠프에서 주목받고 있는 정책은 “휴면기에 접어든 나토” 정책이라고 짚었다. 핵심은 미국이 역외에서 “최후의 균형자” 역할을 하는 동안 유럽이 주요한 방어 부담을 지는 정책 전환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나토에서 미국 역할 축소 의도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장해왔듯 미국이 정말 나토에서 탈퇴한다면 유럽 동맹국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엄청나다. 현재 유럽에 주둔하는 8만5천명가량의 미군 병력, 그중에서도 영국군 규모에 달하는 22개 전투대대의 공백을 유럽이 메워야 할 것이라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그 밖에도 항공, 우주 자산, 정보, 정찰 등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유럽이 새로 체계를 구축하는 데만 10년 가까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는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유럽 전체의 우크라이나 지원액은 현재 미국을 넘어섰지만, 미국의 군사 지원이 빠지면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해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사라지면 유럽이 주도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을 맡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유럽이 실제로 우크라이나에 미국이 빠진 부분까지 지원을 해줄 역량이 있는지에는 의문점이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다가오는 11월 제2차 평화회의 추진 소식을 전하며 러시아 대표단도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존 허브스트 전 주우크라이나 미국 대사는 시엔엔(CNN)과의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협상 의지를 강조해 미래 트럼프 행정부에 손 내밀기를 시도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미국 없는 “강한 유럽” 가능할까
‘트럼프 2.0’을 준비하며 유럽 내부에선 결국 미국에서 벗어나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며, 스스로 강하고, 독립적인 힘을 길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미 트럼프 1기를 호되게 경험한 유럽은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외교 전략을 짜고 있다. 각국의 방위비 지출 인상을 위해 나토 차원에서 제도적·법적·재정적 유인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를 필두로 급성장한 극우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친트럼프 행보가 두드러지면서 유럽의 통합과 단결에 부정적인 기류도 확산되고 있다. 외교정책 전문지 ‘포린어페어스’도 “트럼프 재선으로 일부 유럽 지도자들이 단기적으로 자국 안전보장을 위해 미국과 양자 협정을 맺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있다”고 짚었다. 포린어페어스는 미국에서 누가 정권을 잡든지 미국은 유럽에 이전과 같은 파트너가 될 수 없다며, 안보와 기후변화, 무역 등에서 유럽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짚었다.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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