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도 말리지 못했던 독립운동가의 5대손 허미미의 한국行, 올림픽 은메달로 ‘해피엔딩’ [파리 2024]
한국 유도 대표팀의 허미미(21·경북체육회)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다. 유도 선수였던 아버지를 동경해 도복을 입고 엘리트 선수의 길로 들어선 허미미는 중학교 때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17년 일본 전국중학교유도대회 여자 52㎏급에서 우승했고 이듬해 일본 카뎃유도선수권대회에서 같은 체급에서 준우승했다.
입단 과정에서 자신이 독립운동가인 허석(1857∼1920) 선생의 5대손임을알게 됐다. 김정훈 경북체육회 감독이 선수 등록을 위해 허미미의 본적지인 군위군에 방문했다가 관계자로부터 허미미가 허석 선생의 후손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김 감독이 지역 면사무소까지 직접 찾아다니며 가족 관계를 조사한 결과 허미미의 할아버지인 허무부씨가 독립운동가 허석 의사의 증손자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허석 선생은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 격문을 붙이다 옥고를 치렀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김정훈 경북체육회 감독은 "한국에 아무런 연고가 없었고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다 보니 그때가 허미미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허미미는 어려움에 굴하지 않았고 2022년 태극마크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가대표가 된 이후 허미미의 성장세는 거침없었다. 기존에 약점으로 평가받던 근력을 꾸준한 운동으로 보강해갔고 경기 운영 능력도 국제 경험을 쌓아가며 보완해나갔다. 허미미는 2022년 6월 국제대회 데뷔전인 트빌리시 그랜드슬램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그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올해에도 포르투갈 그랑프리와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꾸준히 좋은 성적을 이어오다가 5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한국 여자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건 1995년 여자 61㎏급 정성숙, 여자 66㎏급 조민선 이후 29년 만이었다.
세계랭킹 3위 허미미는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드마르스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유도 여자 57㎏급 크리스타 데구치(캐나다·세계 1위)와의 결승전에서 지도 3개를 받고 반칙패했다.
허미미의 은메달은 한국 유도가 파리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획득한 메달이다. 앞서 이틀간 치러진 남녀 4개 체급에서는 메달이 나오지 않았다. 한국 여자 유도의 은메달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48㎏급 정보경 이후 8년 만이다.
정규시간(4분) 안에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선수는 연장전으로 접어들었다. 지도를 하나 더 받은 허미미는 주특기인 업어치기 시도가 위장 공격으로 판정받으면 반칙패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분위기였다. 연장전 초반 허미미는 경기를 현명하게 풀어나갔고, 결국 데구치가 연장전 시작1분 48초에 두 번째 지도를 받게 했다.
허미미는 이번 올림픽을 한달여 앞두고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프랑스 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리러 갑니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비록 금메달은 아니지만, 자랑스런 은메달리스트로서 시상대에서 태극기를 보게 됐다.
파리=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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