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2회 공표' 의무인데…교육부, 학교폭력 표본조사 결과 왜 감추나
교육부, 당초 26일까지 지난해 2차 조사 발표하려다
당일 오후 돌연 번복…"9월에 올해 1차 조사와 발표"
두 달 뒤 똑같은 발표 번거롭다는데…'편의주의' 지적
정순신 사태 이후 지난해 4월 대책…결과 '은폐' 의심
"은폐 아니"라지만…교육계서 "발표 미룬 것도 문제"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현행법에 매년 2회 공표가 의무화 된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를 교육부가 별다른 이유 없이 미뤄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교육부는 오는 9월 전수 실태조사 결과와 함께 대책을 내놓겠다고 해명했지만, 이 조사는 시기별로 학교폭력에 대한 효율적 예방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인 만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당초 '2023년 제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오는 31일 발표하려 했다가 이를 돌연 취소하고 공개를 9월로 미루기로 했다.
교육부는 당초 지난 26일 오전까지는 2차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려던 입장이었으나, 당일 오후 입장을 돌연 바꾼 것이다. '2024년 제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오는 9월에 내놓겠다는 것이 이유다.
구연희 교육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소관 부서에서 올해 상반기에 실시한 조사(올해 제1차 실태조사)는 최대한 빨리 처리해서 2학기에 (현장에서) 쓸 수 있게 9월에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라며 "한 달 반에서 두 달 사이에 그런 것(대응 정책)을 발표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두 조사를) 합쳐 발표하고 정책을 설명하겠다고 의사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현행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교육감이 학교폭력에 대한 효율적인 예방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연 2회 이상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표하도록 정해져 있다.
이 조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폭력 피해와 가해, 목격 경험을 묻고 피해 응답률과 응답자 수를 발표한다. ▲언어폭력 ▲신체폭력 ▲집단 따돌림 ▲강요 ▲사이버폭력 ▲스토킹 ▲성폭력 등 피해 유형별 응답률과 가해 경험 및 이유까지 학교폭력의 실태를 정밀하게 살핀다.
2012년 도입 후 매년 2차례 진행돼 왔으며, 2018년부터는 본래의 전수조사 2회 방식에서 전수조사 1회, 표본조사 1회로 변경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에는 교육감이 이 실태조사를 교육부 장관과 협의해 다른 교육감과 공동으로 실시할 수 있고, 조사는 연구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연 2회 국책연구기관을 통해 실태조사를 실시한 후 결과를 공개해 왔다.
통상 매년도 1차 실태조사는 1학기가 시작된 후 매년 4~5월 전수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번에 문제가 된 2차 실태조사는 학생 4%를 표집하는 표본조사로 2학기가 시작된 후인 매년 9~10월께 진행돼 왔다.
통상 1학기에 실시하는 전수 실태조사는 2학기 시작 전, 2학기에 이뤄지는 표본 실태조사는 이듬해 1학기 시작 전에 그 결과가 발표됐다. 다만 2022년 2차 조사 결과 공표부터는 그 시기가 예년보다 늦어져 왔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수행한 2022년 2차 실태조사는 지난해 4월에 보고서가 처음 공개됐다. 수탁기관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으로 바꾼 뒤 이뤄진 지난해 1차 실태조사 결과는 같은 해 12월 교육부가 발표했다.
구 대변인은 "상반기에 실시한 (전수)조사는 9월에 발표를 해야 하반기에 활용할 수 있다"며 "시도교육청별로 자료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어 원하는 시기에 공표를 못하고 늦어진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집계가 늦어졌다지만 매년 2회 공표를 법에서 의무로 정하고 있는 결과 공표를 임의로 오는 9월 일괄 발표하겠다는 것은 교육부 입장을 고려해도 '행정 편의주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통상 교육청에서도 매년 교육부 발표 이후 지역별 실태조사 결과를 공표해 왔다. 올해도 교육청들은 교육부가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는 별도로 결과를 공표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예년보다 피해 응답률 등과 같은 지표가 악화돼 부담을 느껴 은폐하려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2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내정됐던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폭력 의혹으로 낙마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같은 해 4월 '학교폭력 근절 종합 대책'을 내놨다. 대학이 현재 고2가 치르는 2026학년도 입시부터 수험생이 받은 학교폭력 관련 징계 사항을 모든 전형에 반영하도록 정한 게 골자다.
교육부가 공개를 꺼리고 있는 지난해 2차 실태조사 결과는 그해 하반기에 이뤄진 것으로, 대책이 발표된 후에도 지표가 개선되지 않자 비판을 피하기 위해 결과를 감추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자아내는 것이다.
구 대변인은 전날 '은폐 의혹'에 대해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표본조사 결과를 함께 발표하겠다는 것인 만큼 은폐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대해 (교육부는) 당연히 부담을 느껴야 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도 저희 책무"라며 "의사결정이 늦어져 혼란을 일으킨 데 대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이참에 법률이나 법령, 훈령이나 내규에 실태조사 공개 시점을 분명히 정하고 이를 어길 시 제재하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교육부 사정을 잘 아는 교육계 한 관계자는 "교육부가 실태조사 발표 일정과 방식이 없는 현행 규정을 악용한 것"이라며 "조사의 취지 자체가 정책을 마련해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주는 차원인데 지금까지 발표를 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교육부는 통상 발표 시점을 몇 주 전부터 조율하는데 급작스럽게 발표를 하지 않기로 했다면 누군가가 '발표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이라며 "학업성취도나 대학수학능력시험 데이터는 공개하면서 학교폭력은 공개 안 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했다.
한편 구 대변인은 조사 결과 발표를 미루기로 한 당사자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냐는 물음에 "부총리가 알고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대통령실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들은 바 없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dobag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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