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조 대전' 나달은 졌지만…관중은 '흙신' 편이었다
"바모스, 라파(Vamos, Rafa)"
"알레, 라파(Allez, Rafa)"
60번째 맞대결, 나달-조코비치 대전의 승자는 노박 조코비치였다. 하지만 관객들은 프랑스 파리 스타드 롤랑가로스 14회 우승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 나달의 애칭 '라파(Rafa)'를 경기 내내 연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조코비치가 위닝샷을 날리며 득점할 때조차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다. 필립 샤르티에 코트는 나달의 땅이고 왕국이었다.
나달에겐 환호를, 조코비치에겐 야유를
2011년 이전까지만 해도 나달과 조코비치의 상대 전적은 2배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나달이 압도적으로 앞서있었지만, 이후 조코비치는 그랜드슬램과 마스터스 대회에서 나달에게 7연패를 안겼다.
이날도 조코비치의 독주는 첫 세트부터 이어졌다. 조코비치의 서브로 시작한 첫 세트에서 바로 승기를 잡았고 순식간에 점수는 4 대 0까지 벌어졌다. 조코비치는 예전만큼 잘 뛰지 못하는 나달에게 드롭샷(drop shot·언더스핀을 걸어 공을 네트 바로 너머로 떨어트리는 타법)을 2번 연속 날리며 득점했다.
1세트 다섯번째 게임에서야 나달의 백핸드 다운더라인(down the line·선수가 서 있는 곳에서 직선으로 공을 날리는 샷)이 통하면서 겨우 한 게임을 가져왔다. 1세트는 경기 시작 39분 만에 6 대 1로 조코비치가 손쉽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나달이 점수를 잃을 때도 경기장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중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라파'를 외치고 박수 세 번을 치는 패턴이 쉴 새 없이 이어졌고, 급기야 조코비치는 빈정이 상한 듯 귀에 한 손을 대고 안 들린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해 관중들로부터 다시 한 번 야유를 받기도 했다.
'흙신' 나달을 향한 관중의 무조건적인 응원에도 2세트에서도 반전은 없었다. 나달은 자신의 서브 게임을 처음부터 뺏겼고, 3 대 0으로 조코비치가 빠르게 앞서나갔다.
이같은 흐름에 이날 경기를 보기 위해 아침에 런던에서 파리로 온 아벨씨는 "나달이 밀릴줄 알았지만 너무 하다. 가슴이 무너진다(heartbroken)"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브라질에서 온 베르나르도씨와 그 일행은 조코비치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더블폴트를 내라는 취지에서 "폴트(fault)"를 외치기까지 했다. 조코비치가 더블폴트를 내자 관중석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조코비치가 드롭샷을 실패하자 "예스(yes)"라고 소리 치는 관중들도 있었다.
나달이 네번째 게임에서 세 점을 연속 따자, 조코비치를 향한 원색적인 표현도 들렸다. 여기에 나달의 드롭샷까지 성공하자 필립 샤르티에 코트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이어 나달이 조코비치의 스매시까지 막아내면서 브레이크에 성공했고 2세트 승부는 4 대 4로 팽팽해졌다.
하지면 여기까지였다. 롤랑 가로스에서 '흙신' 나달의 기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나달은 롤랑 가로스에서 100승 넘게 이겼고 그의 승률은 한때 97%를 넘어설 정도였지만 이날만큼은 아니었다.
이제는 두 선수 모두 30대 중반을 넘어선 노장. 나달은 사실상 은퇴를 앞두고 있고 조코비치 역시 무릎 수술으로 기량이 많이 하락해 있다. 이날 경기는 두 선수의 속도와 코트 커버리지 등 모든 면에서 세월을 실감하게 하는 측면도 있었다.
결국 2시간도 채 안돼 승리는 조코비치의 몫이 됐다. 매치 포인트가 끝나자 이제 갓 12살이 됐다는 니콜라는 엄마의 제지에도 눈물을 글썽이며 주먹으로 무릎을 내리칠 정도로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니콜라는 "알카라스(Carlos Alcaraz)가 복수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알카라스는 나달과 같은 스페인 출신으로 그의 후예로 불린다. 두 선수는 파리 올림픽에서 복식에 함께 출전했다. 알카라스는 지난달 윔블던 결승에서 조코비치를 3 대 0으로 제압했다.
나달은 이날 경기를 끝으로 롤랑가로스에서의 여정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25살에 이미 노인의 몸이었다. 왼발 중앙의 발배뼈가 괴사하는 퇴행성 질환 뮐러 와이즈 증후군을 진단받았다. 하지만 특유의 투지와 집념으로 롤랑가로스를 포함해 그랜드 슬램 트로피 22개를 들어올렸다. 올림픽 단식과 복식에서 각각 금메달도 딴 유일한 선수다. 반면 조코비치의 금메달 사냥은 현재진행형이다.
필립 샤르티에 코트 관중석에는 "승리는 가장 끈질긴 사람의 몫(Victory belongs to the most tenacious)"이라는 나폴레옹의 격언이 새겨져 있다. 2005년 첫 우승부터 2022년 마지막 우승까지 이 격언을 가장 잘 보여준 선수로 늘 나달이 꼽혀 왔다. 나달은 이날 최대 라이벌인 조코비치에게 패했지만, 이날 관중들은 나달이 퇴장한 뒤에도 계속 박수를 보냈다.
- 이메일 :jebo@cbs.co.kr
- 카카오톡 :@노컷뉴스
- 사이트 :https://url.kr/b71afn
파리=CBS노컷뉴스 박희원 기자 wontime@cbs.co.kr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티메프 사태' 피해자들, 큐텐 대표 고소…경찰, 수사 착수
- 임도 확대는 환경파괴다?[노컷체크]
- "파리올림픽은 '침몰하는 한국'의 상징" 日 극우의 조롱[이슈세개]
- '역대급' 정보사 기밀유출에도 불구속 수사…軍도 오리무중
- [속보]0.1점 차 스릴러! 여고생 스나이퍼 반효진, 韓 100번째 금메달 명중[파리올림픽]
- 구영배 첫 입장 냈는데…티메프 피해액 고작 '500억'?
- 중기부 '티메프' 피해기업에 긴급경영안정자금 2천억 대출
- 한동훈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 발의해야…그거 걸고 당선돼"
- [단독]경찰청장 칭찬한 '세관마약 수사'…"용산 심각" 발언 후 외압
- "쓰레기 더미에 대문서 잠을"…저장강박,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