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백혈병 앓던 고3 수험생, 3년 만에 기부자로 돌아와
최근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인 ‘햇살나무’ 의료진에게 기부금 76만원이 전달됐다. 의료진은 “금액은 크지 않아도 우리에겐 어떤 기부보다 크고 값진 기부”라고 했다. 2021년 백혈병으로 이 병원에서 반년 동안 입원 치료를 받은 당시 고3 학생 장연호(21)씨가 보낸 ‘특별한 기부금’이기 때문이다. 장씨는 작년 말 투병기를 엮어 ‘끝에서 바라본 시작’이란 제목의 책을 냈고, 이번에 초판 인세 전액을 병원에 기부했다.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던 고3 혈액암 환자가 3년 만에 병원의 기부자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작은 돈이지만, 내 지갑 속 종잇조각이 아니라 3년 전 나처럼 이 병원에서 생일을 맞는 아이들의 케이크 값이라도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기부는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기부처인 서울아산병원 ‘햇살나무’는 심층 상담, 재활 치료, 음악·미술 치료 등으로 소아·청소년 환자의 통증을 줄이고 환자·가족의 심리 회복을 돕는 일을 한다.
병원 의료진은 2021년 6월 고3 연호를 처음 만났다. 전북 전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100등 밖이던 성적을 문과 1~2등까지 끌어올린 연호는 기말시험을 하루 앞두고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끝까지 아니길 바랐는데, 병명을 듣는 순간 내 꿈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 같아 눈물만 흘렀다”고 했다. 이후 6개월간 투병하며 골수를 태우는 항암 치료의 고통, 혼자 있을 때마다 밀려드는 절망과 외로움을 다 견뎌냈다. 주치의인 임호준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는 “연호는 가슴에 뚫린 관으로 독한 항암제를 맞으며 시름시름 앓으면서도 ‘교수님, 곧 제 생일인데 선물로 골수 검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웃을 정도로 긍정적인 아이였다”며 “자기 의지로 병을 이겨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가족과 함께 마음을 다해 보살펴 준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 선생님들 덕분에 버텨냈다”고 했다.
간호사들은 새벽에도 발진이 난 그의 온몸을 얼음물 적신 수건으로 닦아줬다. 인권 변호사가 꿈이라는 연호 얘기를 듣고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 등을 다룬 소설책 ‘앵무새 죽이기’를 선물하기도 했다. 교수와 전공의,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은 “이겨낼 수 있다”고 계속 용기를 북돋우며 그의 생일인 8월 1일엔 깜짝 생일 파티도 열어줬다. 장씨는 “이분들 덕분에 몸도, 마음도 조금씩 회복하면서 ‘난 참 많은 것을 받고 있구나’ ‘암세포가 아니라 내 좁은 마음이 지금까지 날 힘들게 한 거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다행히 여동생과 조직 적합성이 맞아 ‘조혈모세포 이식’이 가능했다. 친구들이 수능 시험을 치르던 2021년 11월 그는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았다. 성공적이었다. 2021년 말 퇴원 후 지금은 3개월에 한 번씩 경과 관찰을 위해 서울아산병원 외래 진료를 받는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조혈모세포 이식 후 5년이 지나면 완치 판정을 받는다.
그는 입원 당시 임 교수에게 쓴 감사 편지에서 “완치되면 세상의 힘든 분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작년 말 펴낸 그의 책 마지막 페이지엔 ‘Thanks to(감사합니다) 의료진’이란 제목으로 자기를 보살펴준 의료진 62명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써 넣었다. 올해 수능을 준비 중인 그는 “투병기를 쓰면서 ‘이 글은 내게 손 내밀어 준 분들이 주인공이구나’란 사실을 알게 됐고, 그래서 기부도 결심하게 됐다”며 “이젠 명문대를 가고 법조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이유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게 내 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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