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만 긴 '빈손' 필리버스터…고성·막말 '민낯'만 남아
100시간 훌쩍 넘기며 역대 두번째 최장 토론
여당, '여론 호소' 부족 평가…필리버스터 취지 못 살려
야당, 방송4법 통과 강행해도 尹 거부권에 폐기 수순
일부 의원 "이 새X" 발언 등 거친 언사만 부각돼
8월 국회도 '첩첩산중'…野, 노란봉투법·민생회복지원법 '강행'
국회에서 '방송4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일정 방해)가 엿새째 진행된다. 역대 두번째로 긴 필리버스터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여야 모두 실익은 없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당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법안의 부당함을 국민에 충분히 호소하지 못한 채 '전략 부재'만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해당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이면서, 법안을 강행 추진한 야당도 '빈손'이 될 전망이다.
결국 여야 의원들의 고성과 막말만 회자되면서 갈등으로 점철된 22대 국회의 '민낯'만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온다.
엿새째 필리버스터…역대 두 번째 최장으로 기록될듯
국민의힘이 야당의 '방송4법' 강행 처리에 대항해 개시한 필리버스터가 30일 엿새째 진행된다. 전날 오전 야당의 교육방송공사법 상정 후 필리버스터 첫 주자로 나선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13시간 동안 토론을 이어가며 최장 시간 발언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지난 27일 오후 2시32분부터 28일 새벽 12시36분까지 총 10시간4분 동안 찬성 토론을 했다.
김 의원은 "저의 첫 본회의 발언이 필리버스터여서 지역분들께 죄송하다"면서도 "민주당이 언론을 장악하려는 술수가 역사가 되면 안된다. 나라 망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민주당을 지적했다. 그는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 교육 원칙을 언급하며 EBS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며 정쟁의 대상이 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육방송공사법 필리버스터는 이날 오전 중 강제 종료될 예정이다. 앞서 지난 25일 방송통신위원회 설치·운영법(방통위법)을 시작으로 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계속돼 왔다. 야당이 법안을 상정하면 여당이 필리버스터를 열고, 이후 야당이 표결로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한 뒤 법안을 통과시키는 절차가 '5박6일' 동안 쳇바퀴처럼 반복된 것이다. 4개 법안에 걸친 토론 시간이 100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2016년 테러방지법 때 이후 역대 두 번째 장시간 필리버스터로 기록될 전망이다.
여당, 반대 여론 결집 '미흡' 평가…주호영 "바보들의 행진 멈춰야"
긴 시간 소모전을 치렀지만, 정작 필리버스터를 개시한 여당은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 당초 법안의 부당함을 국민에 호소하며 여론을 환기하는 것이 필리버스터 취지인데,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토론에 나선 의원들은 소속 당의 정치적 입장에 입각한 주장만 되풀이하거나, 관련 법안 문구를 줄줄이 읽는 등 '시간을 때우는' 경향이 짙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작 여당 의원들도 열의를 띄지 않고, 정작 야당에 주도권을 내주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여당은 조를 짜서 본회의장에 의원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수시로 자리를 비웠다. 야당 의원이 발언할 때 여당 의원석이 텅텅 비자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민의힘 의원들이 필리버스터를 제기했는데 단 한 분도 안 계신 것은 매우 유감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여당에서부터 나왔다.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지난 28일 입장문을 통해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지는 증오의 굿판을 당장 멈춰야 한다. 여야 지도부가 국회의원들을 몰아넣고 있는 이 바보들의 행진을 멈춰야 한다"라며 법안 처리와 필리버스터를 모두 중단하자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여당이 형식적으로 필리버스터를 개시했을 뿐 구체적인 전략 없이 야당에 끌려다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야당, 법안 통과시켜도 尹 거부권으로 '폐기' 수순 가능성
야당도 실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30일을 마지막으로 방송4법을 모두 통과시키더라도, 해당 법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국회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21대 국회에서도 같은 취지의 법안인 '방송3법'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했고, 해당 법은 결국 재의결 문턱 200석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번에 추진한 방송4법도 같은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필리버스터 국면이 윤 대통령의 거듭된 재의요구권 행사를 유도해 정치적 부담만 더하겠다는 정무적 판단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남는 건 일부 의원의 거친 언사뿐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토론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을 비난해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가 박근혜 정부 당시 '계엄령 문건'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해당 발언에 대해 우 의장도 "주제에 충실해달라"고 제지했다. 또 박 의원은 여당 의원석을 가리키며 "뭐 하는 건가. 이자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또 마이크를 치우더니 "이 새X들이"라고도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여당 의원들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본회의장에 소란이 일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가뜩이나 형식적으로 토론이 진행된 상황에서 일부 의원이 거친 발언을 쏟아내면서 국민들이 피로감만 느낀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고 전했다.
야당 의원들도 필리버스터에 형식적으로 응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의원 상당수는 필리버스터 도중 열린 전당대회 합동연설회 참석 등을 이유로 본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8월 국회도 '쳇바퀴' 전망…노란봉투법·민생회복지원금법 '대기'
결국 여야 모두 이번 필리버스터를 두고 '낙제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한성민 교수는 통화에서 "여당의 경우 필리버스터가 올림픽, 주말과 겹쳐 여론의 주목을 충분히 끌지 못했고 전당대회 토론회가 열렸던 민주당도 마찬가지"라며 "필리버스터라는 제도를 활용했음에도 각 당이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을 충분히 잘 전달하거나 설득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이같은 '정쟁 쳇바퀴'가 8월 국회에서도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우선 방송4법이 거부권으로 인해 국회로 돌아오면, 재표결 시점과 이탈표 전망 등을 두고 여야가 갈등을 빚을 공산이 크다. 또한 민주당은 방송4법 통과 이후 곧바로 '노란봉투법'과 '민생회복지원금법'을 강행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란봉투법은 21대 때 추진됐다가 대통령 거부권으로 폐기된 바 있다.
여기에 국민의힘이 "단호하게 맞서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또 다시 필리버스터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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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정석호 기자 seokho7@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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