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가사도우미, 곧바로 건보 혜택…합법의 경우 내국인과 동일 보장

박미주 기자 2024. 7. 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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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웰컴인!' 이주민들의 의료와 건강보험
[편집자주] 이르면 올해 우리나라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 '다인종·다문화 국가'가 된다. 다문화 인구, 장기 체류 외국인 등 이주배경 인구의 비중이 5%를 넘어서면서다. 합계출산율 0.7명으로 인구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대한민국. 국가소멸로의 질주를 멈출 방법은 사실상 이민을 늘리는 것뿐이다. 이주민 또는 다문화 시민들과 함께 화합과 번영을 이룰 방법을 찾아본다.

외국인 국내 체류 현황/그래픽=이지혜
오는 9월부터 활동할 필리핀 가사·육아 관리사(도우미)들도 국내 입국 후 바로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될 예정이다. 합법적으로 국내 직장에 다닐 경우 외국인들도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로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가사도우미는 대규모 이주노동 사례로 꼽히는 만큼 건보혜택 여부에도 관심이 쏠렸었다.

현 건강보험체계에서는 합법적인 경우 외국인이라고해도 건보 적용에는 큰 불이익이 없지만 세세한 부분에선 조정이 필요하단 의견도 나온다. 다만 외국인 지역가입자는 6개월 이상 국내에 체류해야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하다. 불법체류자와 그 자녀인 미등록 아동은 건강보험 가입 대상에서 배제된다.

29일 정부부처에 따르면 오는 9월부터 서울에서 가사·육아 관리사로 근무할 필리핀인 100명은 국내에서 곧바로 건강보험 가입자가 돼 의료비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외국인의 경우 '건강보험법' 제109조에 따라 직장에서 합법적으로 근무하면 직장가입자가 될 수 있다. 필리핀 관리사들은 법에 등록 요건을 갖춘 가사서비스 제공기관 소속으로 근무할 예정이라 직장가입자로서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모두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낮은 의료비를 부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불법체류자는 기본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통계청 지표누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24만5912명이고 이 중 불법체류자는 41만1270명에 이른다. 이들이 의료 혜택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또 불법체류자의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2022년 19세 이하 미등록 이주 아동 수는 5078명으로 추산된다. 한국에서 태어난 미등록 아동 수는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시민단체 등은 이들을 포함하면 미등록 이주 아동 수가 2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합법적으로 한국에 거주하더라도 직장가입자가 아닌 지역가입자는 건강보험 가입에 문턱이 있다. 우선 6개월 이상 거주해야 한다. 직장가입자나 피부양자가 아닌 경우 국내에서 6개월 이상 거주하면 무조건 직장가입자로 보험료를 전액 납부해야 한다.

외국인은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하는 데도 제한이 있다. 19세 미만 미성년 자녀이거나 배우자일 때 건보 혜택을 바로 적용받을 수 있다. 유학(D-2)·일반연수 초중고생(D-4-3)·비전문 취업(E-9)·영주(F-5)·결혼이민(F-6) 등의 거주 사유가 있어도 즉시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직계존속(본인과 배우자의 부모), 형제자매 등의 경우 지난 4월부터 국내에서 6개월 이상 체류해야 피부양자로서 급여적용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이 강화됐다. 실제 함께 거주하지 않으면서 국내에서 의료비 혜택만 보기 위해 피부양자로 등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외국인(재외국민 포함) 건강보험료 부과 대비 급여비 현황/그래픽=이지혜

특히 중국 국적자의 경우 지리적으로 가까운 점 등으로 건보 혜택만 받고 본국으로 귀국하는 행태가 만연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 전체 외국인이 건보료로 낸 금액이 보험 혜택을 본 금액보다 많아 재정수지가 흑자인 반면 중국 국적자는 적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외국인은 2조690억원을 건보료로 납부했고 7403억원의 재정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외국인 가입자 중 국적별로 상위 10개국을 보면 중국만 재정수지가 적자다. 중국 국적자의 건보 재정 적자는 2019년 987억원이었고 코로나19로 의료이용이 줄면서 2021년 109억원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640억원으로 다시 확대됐다.

일각에선 외국인 전체 건보 재정수지가 흑자이고 외국인 노동력 활용 확대와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 외국인 건보 가입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건보당국과 일부 전문가들은 합법적인 상태에서만 건보 가입이 가능하다는 법적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일부 외국인의 '건보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외국인들이 건보 제도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아 지난해부터 외국인에 대해 건보 적용을 까다롭게 보는 경향이 있고 이에 본인확인제도 등도 도입한 것"이라며 "모든 사회보험은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는 "현재도 산업연수생 등 외국인 근로자의 건보 적용에는 문제가 없고, 불법체류자에 건보 적용을 해 주는 나라는 없다"며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경우 6개월 체류 요건이 있는데 한국에서 건보 혜택만 받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외국인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진국 사례를 참고하고 여야 간에 합의해 해당 규정이 정해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인구 구조상 청소년들이 50~60대에 비해 3분의 1, 4분의 1밖에 안 돼 건보 제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필리핀 같은 동남아시아 청소년들이 한국 대학에서 무상으로 교육받고 취업해 우리 국민으로 살아가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식의 이민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미주 기자 beyo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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