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노란봉투법의 운명
야당이 지난 22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을 환노위 소위에서 통과시켰다.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법안이다. 이 별칭은 불법 파업으로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쌍용차 노조원들을 돕겠다며 한 시민이 노란봉투에 성금을 넣어 보낸 데서 유래한다. 노조의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막는 게 핵심이다. 2015년 4월 당시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처음 발의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정과제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은 집권 기간 5년 동안 입법을 실행하지 않았다. 민법 등 상위법과 충돌할 수 있고, 현행 노동법으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봤던 게 표면적인 이유다. 정권을 쥔 마당에 야당 때의 정쟁 수단을 꺼내 들 필요가 없기도 했다. 노사갈등이 증폭되고, 기업투자는 줄어들고, 해외투자 유입은 감소하는 등 부작용에 따른 부담을 자초할 이유가 없었다.
노란봉투법은 2022년 대우조선해양이 노조 집행부를 상대로 470억원의 손배소송을 청구한 것이 계기가 돼 소환됐다. 사용자를 원청기업 등으로 확대하고, 손해배상 청구 시 기업의 입증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이 역시 기존 개정안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게다가 문재인정부가 내려놓았던 안을 윤석열정부가 받아들 수 없었다. 야당 주도로 지난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야당은 재발의로 대응했다. 개혁신당을 제외한 야5당 전원, 민주당 69명 등 87명이 발의자 명단에 포함됐다. 법의 완성도를 높이기보다 정부를 타격하는 게 목적이니 더 강력한 내용을 담았다. '노조를 조직하거나 가입한 자는 노동자로 추정한다'는 조항을 넣어 해고자도 노조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특수고용직·플랫폼 종사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손해배상 청구제한 범위를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 외에도 '그 밖의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넓혔고, 노동조합의 의사결정을 따르다 발생한 손해에 대해 근로자 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했다.
이는 개정안이 갖는 논란이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근 입장문에서 "헌법과 민법, 노사관계 법제도 전반과 배치된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됐다. 이 장관이 '특정 소수 노조의 기득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으니 이 개정안 역시 거부권 행사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일 것이다.
야당도 누구보다 이를 잘 안다. 그러나 정부를 때리고 민주노총 등 지지층의 지지를 끌어모으는데 노란봉투법은 요긴한 도구다. 만약 거부권을 행사하면 '거부권 행사'에 대한 피로감을 고조시키면서 지지층의 정부 '혐오'를 자극하면 되고, 만에 하나 일부라도 합의를 이끌어내 법 개정을 성사시킨다면 정치적 승리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러니 위헌 소지나 형평성 등 법의 결함은 애시당초 고려사항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정치공학적 계산이 깔려 있는 까닭에 경제단체나 법률가들이 법이 야기할 파괴적 결과를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행위가 된다.
그렇지만 자국우선주의로 치닫는 글로벌 경제 전장에서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정쟁은 한국경제나 민생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암참)가 '투자처로서의 한국의 매력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한 것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여야가 할 일은 암참의 표현처럼 '노동자와 사측 모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보다 균형 잡히고 공정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각국이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공장 유치경쟁을 유치하는 마당에, 특히 야당의 목표가 '파업공화국'과 그에 따른 '기업 해외이전'과 '일자리 걷어차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강기택 산업1부장 acek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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