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유언 따라 태극마크…유도 허미미, 은메달 감격 [올림픽]

여자 57㎏급 결승서 세계 1위 데구치에 석패
시상대 올라 애국가 제창 약속은 4년 후 LA서

(파리=뉴스1) 이상철 기자 =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일본 대신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올림픽에 출전한 '독립투사의 후손' 허미미(22·경상북도체육회)가 시상대에 섰다. 그의 목에는 하늘에 있는 할머니께 바치는 귀중한 은메달이 걸려 있었다.

세계랭킹 3위인 허미미는 30일 오전(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샹드마르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유도 여자 57㎏급 결승에서 크리스타 데구치(1위·캐나다)에 석패했다.

팽팽한 힘겨루기 속 정규 시간(4분) 내 승부를 보지 못하고 골든스코어에 돌입한 허미미는 위장공격을 했다는 이유로 세 번째 지도를 받아 반칙패를 당했다.

허미미는 지난 5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펼쳐진 세계선수권 결승에서는 데구치를 반칙승으로 이기고 우승했지만, 올림픽 결승에서 이뤄진 재대결에서는 힘이 조금 모자랐다.

그래도 잘 싸웠고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허미미는 쟁쟁한 선수들을 꺾고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체급에서 한국 여자유도가 올림픽 메달을 딴 것은 1996 애틀랜타 대회 은메달리스트 정선용 이후 28년 만이다.

허미미는 파리 대회에서 유도 첫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앞서 유도 대표팀은 27~28일 4개 체급에 나선 선수들이 모두 메달 획득에 실패했는데 허미미가 막힌 혈을 뚫었다.

허미미는 한국 유도의 에이스인 허미미는 특별한 이력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그는 과거 항일 격문을 붙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던 독립운동가 허석의 후손이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허미미는 6세 때 유도 선수인 아버지를 따라 유도를 시작했다.

일본에서도 유도 유망주로 주목받던 그는 명문 와세다대학에 재학 중이던 2021년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한국 국적을 택했다. 할머니는 그에게 "꼭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허미미는 한국으로 건너와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입단했고, 이듬해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기량이 만개한 그는 2년 간 국제대회에서 8차례나 우승하며 한국 유도의 간판으로 우뚝 섰다.

특히 지난 5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세계선수권에서는 여자 57㎏급을 제패, 29년 만에 한국 여자 유도 금메달을 차지했다.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낸 허미미는 파리 올림픽 여자 57㎏급 우승 후보로 꼽혔다. 2020 도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조구함 SBS 해설위원은 "이제 허미미는 모든 선수가 기피 대상 1순위로 꼽는 훌륭한 선수로 성장했다"며 허미미의 입상을 기대했다.

허미미는 그 기대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다.

32강을 부전승으로 통과한 허미미는 16강에서 팀나 넬슨 레비(이스라엘)를 상대로 고전, 골든스코어 끝에 반칙승을 거뒀다.

힘겹게 첫 관문을 뚫자, 거침없었다. 허미미는 8강에서 상대 전적 3전 전패로 밀린 '천적' 르하그바토고 엔흐릴렌(몽골)을 만나 종료 8초 전 안다리걸기로 짜릿한 절반승을 올렸다.

기세를 높인 허미미는 4강에서 하파엘라 시우바(브라질)를 제압하고 결승까지 안착했지만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다.

훈련하면서 애국가 가사도 열심히 공부한 허미미는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시상대에서 애국가를 부르겠다"고 포부를 밝혔는데, 그 약속을 4년 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으로 미뤘다.

파리 대회 한국 선수단의 첫 금메달 주인공인 펜싱 오상욱의 팬이기도 한 허미미는 "꼭 금메달 같이 따서 친해지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비록 함께 은메달을 따지 못했으나 그는 전날 오상욱을 만나 그 꿈을 이루기도 했다.

rok195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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