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새 물가 6만5000% 급등… 산유국이 빈국으로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베네수엘라는 남미의 부국(富國)으로 꼽혔다. 지금 같은 베네수엘라의 추락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산유국, 이를 바탕으로 펼치는 대규모 복지 정책을 자랑했다. 꾸준히 세계 미인 대회 수상자를 배출하는 미인과 미용 산업 강국이자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는 음악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의 나라 등 문화·예술적으로도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이런 나라가 몰락하는 데는 1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2012년 약 1만2700달러였던 베네수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8년 뒤인 2020년 88%가 하락한 1600달러까지 떨어지며 세계 최빈국으로 추락했다. 2014년부터 경제가 본격적으로 쪼그라들어 2020년에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30%를 기록하기도 했다. 화폐 가치가 폭락하며 연간 물가 상승률이 최고 6만5000%(2018년 기준)까지 치솟는 비현실적 경제난에 시달렸다. 베네수엘라 국민의 평균 체중이 2016년 8㎏ 감소한 데 이어 2017년 11㎏ 더 줄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생활고를 버티다 못한 국민은 나라를 등지고 난민이나 불법 이민자가 돼 미국 국경을 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베네수엘라 인구 약 30%인 770만여 명이 고국을 탈출했다. 젊은 여성들은 성매매에 내몰리고, 엘 시스테마 단원들이 구걸에 나섰다는 뉴스도 나왔다.
베네수엘라 경제 붕괴의 원인으로는 1999년 집권한 좌파 대통령 우고 차베스, 그 뒤를 2013년 이은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의 ‘좌파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이 지목된다. 특히 국부 창출의 대부분을 담당하던 국영 석유 기업 PDVSA가 번 돈을 재정으로 멋대로 갖다 쓰면서, 무차별적으로 남발하는 복지 정책의 재원으로 삼은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평가가 많다. 차베스와 마두로는 정권 유지를 위해 무상 교육, 무상 의료를 전격 도입하는 한편 저소득층에게 식료품을 무료 배급하고, 학생들에겐 무료로 컴퓨터를 나눠 주기도 했다.
무분별한 ‘돈 뿌리기’에 대한 지적이 나오면 ‘반미(反美)’로 각을 세웠다. “자원 주권을 민중에게 돌려주고, 반미 동맹을 만들겠다”며 내수용 석유를 거의 무료로 국민에게 주고, 쿠바 등 인근 반미 국가에 원조하기도 했다. PDVSA는 벌어들인 돈을 정부가 빼 가는 바람에 생산 장비와 시설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기능을 하지 못하는 ‘유령 기업’이 돼버렸다. 이처럼 경제가 무너졌는데도 마두로는 비판적 정치인과 시민사회 인사들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유지했고 그 결과 미국·유럽연합(EU)의 경제 제재 대상이 되며 경제난이 오히려 가중되는 ‘자원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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