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겨울을 당겨 생각하며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불안을 묘사하는 천재적인 작가죠. 그녀 덕에 공포와 불안이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에서
미국 범죄 소설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책 ‘11′을 구입하는 주인공에게
서점 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공포와 불안의 차이는 뭘까요?
‘당신의 불안은 죄가 없다’를 쓴 미국 심리학자 웬디 스즈키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공포는 실제로 위험이 임박한 상황일 때 발생하며, 불안은 위험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불확실한 경우에 나타난다.
즉 공포는 실체가 있지만, 불안은 상상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요.
저자는 불안을 관리할 수 있는 여러가지 팁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데요.
결국 이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생각을 전환해,
스트레스에 소비되는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변환시키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불안은 뇌가 만드는 상상의 산물… '좋은 에너지'로도 바꿀 수 있다
그곳의 아이들은
한번 울기 시작하면
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박준 시인의 시 ‘장마’에는 ‘태백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시적 화자는 연인의 편지에 답장을 쓰면서
아침부터 취해 있는 사내, 석탄재로 뒤덮인 길이 햇빛에 반짝이는 풍경,
갱도에서 숨진 광부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주로/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터져 나온 수맥에 익사를 합니다”라 적던 그는 그러나 곧 종이를 구겨버리고 새 편지지를 꺼냅니다. 그리하여 이 시는 이렇게 끝납니다.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시적 화자는 왜 연인에게 탄광촌의 참혹함을 말하려다 그만둔 걸까요?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까지 세상의 그늘을 드리우고 싶지 않고,
희망만을 나누고 싶어서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이 시가 실린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는 또 다른 여름 시가 있습니다.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메밀국수’의 첫 연은 이렇습니다.
분지의 여름밤에는 바람이 없습니다 밤이 되어도 화기(火氣)가 가시지 않을 것 같아 저녁밥을 안치는 대신 메밀국수를 사 먹고 돌아왔습니다
시적 화자는 인근의 오래된 막국숫집,
연신 부채질하며 저녁을 먹었는지 물어보는 동네 사람들 이야기를 하다 적습니다.
말에 큰비가 온다고 하니 이곳 사람들은 그 전까지 배추 파종을 마칠 것입니다 겨울이면 그 흰 배추로 만두소를 만들 것이고요.
여름의 절정에서 겨울을 당겨 생각하는 건 잠시나마 더위를 잊기 위해서겠죠.
장마는 끝물에 다다랐고, 폭서와 열대야가 시작되었습니다.
겨울의 한 자락을 그려 보며 조금이나마 덜 덥고 무탈한 한 주 보내시길 빕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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