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186] ‘마음 컴퓨터’를 기본 모드로 돌려보라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4. 7. 29.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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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생긴 글쓰기 습관이 있다. 일단 글 주제를 정하고 나면 관련 자료들을 집중해서 읽는다. 그리고 3~4일 정도는 입력된 정보들이 ‘마음’이라는 광야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도록 ‘마음 여행’의 시간을 갖는다. 이런 과정에서 새 지식과 기존 지식 간의 상호 작용이 일어나고 거기에 통찰도 가미되어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것을 경험한다.

마음과 뇌를 컴퓨터에 비교한다면 마음이 소프트웨어이고 뇌가 하드웨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쉰다는 것은 뇌의 스위치를 끄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실제 컴퓨터와 다르게 마음 컴퓨터는 쉼을 가질 때 ‘기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는 회로가 오히려 켜진다. 즉, 뇌가 쉰다는 것은 ‘스위치 오프’가 아닌 ‘모드 체인지’의 과정이다. 기본 모드에서도 에너지 소비량은 일할 때 대비 20%정도만 감소한다. 쉰다는 것이 의외로 능동적 과정이다.

기본 모드에서는 어떤 일들을 처리할까. 업무 수행 등 목적 지향적 모드 상태에서는 외부 세계와 연결되어 내가 주인공 역할을 했다면, 기본 모드에서는 외부와 연결을 잠시 끊고 관객 입장에서 내면의 감정이나 생각을 살펴본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의 감정과 소통 등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살펴본다. 또 여러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과정도 이루어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누구인가,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같은 내 인생의 서사(narrative)를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가며 통합한다. 내면의 마음 여행 시간인 것이다.

‘잘 일하기 위해서 쉬어야 한다는 말’이 짜증 난다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일 모드와 쉼 모드는 상호 보완적이다. 외부 세계와 접촉하며 목적 지향적 업무를 수행하는 ‘일 모드’에서 얻은 여러 정보를 ‘쉼 모드’에서는 내면 세계의 내 데이터베이스와 연결하여 통합하는 작업을 한다. 그런데 만약 일 모드일 때 자꾸 쉼 모드가 켜지는 것은 어떨까. 이건 업무 몰입 등을 방해해 일의 효율을 오히려 떨어뜨린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집중이 잘 안 될 때 커피숍 같은 장소에서 오히려 집중력이 올라가는 것을 경험한다. 소음 등 적당한 외부 자극이 기본 모드로 빠지는 것을 줄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치매의 경우 기본 모드 활성이 감소했다는 보고가 있는 등 마음의 기능에서 기본 모드에 관한 관심과 연구가 증가한 상황이다. 그만큼 쉼은 삶의 옵션이 아닌 중요한 과정이다.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일도, 쉬기도 쉽지 않은 시기이지만, 가벼운 산책, 티타임 등 나만의 기본 모드 스위치를 켜는 노하우를 개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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