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선 강자 선발, VR 훈련, 3C 금지령...한국 사격 부활의 비결들
한국 사격은 진종오(45) 은퇴 후 암흑기를 맞았다.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 없이 은메달 1개에 그쳤다. 작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비(非) 올림픽 종목인 러닝타깃에서 금메달 2개를 땄을 뿐, 올림픽 종목에선 금메달이 없었다.
하지만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사격 대표팀은 자신감이 넘쳤다.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가 목표”라고 했다. 여자 10m 공기소총 반효진과 공기권총 오예진이 벌써 금메달 2개를 따냈다. 혼성 공기소총 박하준·금지현과 공기권총 김예지도 각각 은메달 1개씩을 보탰다. 아직 끝이 아니다. 애초 이번 대회 한국의 주력 종목으로 꼽힌 여자 25m 권총(결선 8월 3일)이 남았다. 양지인과 김예지가 모두 금메달 후보로 평가받는다.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던 2012 런던 올림픽(금3·은2) 영광을 재현하길 기대하고 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9개월 만에 열린 파리 올림픽을 위해 한국 사격은 체질부터 바꿨다. 대표팀 선발전을 결선 경기 방식으로 바꿨다. 원래는 본선 경기 점수로만 국가대표를 뽑았다. 본선에선 정해진 시간 내에 수십발을 쏴 점수를 합산하고, 결선에선 10발 이후엔 2발 쏠 때마다 1명씩 탈락하는 방식이다. 국제 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본선에서 잘 쏘고도 결선에서 미끄러지는 경우가 많아, 처음부터 결선에 강한 선수들을 뽑겠다는 계산이었다.
이번 올림픽 사격 총감독을 맡은 장갑석(65) 감독 리더십도 빛났다. 장 감독은 한국체대 교수로 30여 년간 학생 선수들을 지도해왔다. 현재 국내 사격 지도자들과 대한사격연맹 임원 다수가 그의 제자다. 1992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연맹 경기력향상위원장을 맡은 이은철 실무부회장이 정년 퇴임을 앞둔 노(老)교수를 감독으로 모셔왔다. 장 감독은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단시간에 선수단을 장악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훈련 중 ‘3C 금지령’을 내렸다. 휴대전화(cell phone)를 못 쓰게 하고, 커피(coffee)와 담배(cigarette)도 즐기지 못하게 했다. 금주령도 내렸다. 스스로를 ‘365일 중 400일을 술 먹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애주가인 장 감독부터 스스로 술을 끊었다. 김태호 사격연맹 부회장은 “지금까지 대표팀을 맡았던 지도자 중에 이렇게 빨리 선수단을 장악한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올림픽을 앞두고는 선수들이 경기가 열리는 프랑스 샤토루 슈팅 센터를 익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왔다. 사격연맹과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사전 답사해 VR(가상현실) 기기로 경기장 곳곳을 찍어왔다. 출입구부터 사로(射路)로 이어지는 동선부터 화장실 위치, 조명 각도 등을 세세하게 VR로 재현해 선수들이 한국에서부터 경기장을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여자 10m 공기권총 금메달리스트 오예진은 “평소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 편인데 미리 사격장을 실제처럼 볼 수 있어서 좋았다”며 “현장에 오니 익숙한 기분이 들고 낯설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 사격은 앞으로 더 전망이 밝다. 이번 올림픽 대표팀 16명 중 9명이 2000년대생. 경험만 더해지면 제2의 사격 르네상스가 펼쳐져 진종오를 뛰어넘는 스타 탄생도 기대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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