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아홉 명? 유명 사건 재판 보도의 맹점 [서아람의 변호사 외전]

2024. 7. 29.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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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변호사, 재판 참여 안 해
메인·서포트 나눠 각자 역할
수임 법무법인 복수일 경우
주도권 다툼·일 떠넘기기도

모든 재판은 중요하지만, 동시에 모든 재판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유명인이 재판의 주인공이 된 경우, 기일에서 오간 대화 한 마디 한 마디가 전부 보도될 정도로 초미의 관심사가 됩니다. 보고 싶은 재판을 일일이 찾아가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보도는 참 고마운데요. 동시에 충분한 설명이나 정보 제공이 곁들여지지 않는 것이 조금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령, 불륜 의혹을 받고 있는 남자 배우 K씨가 피소당한 위자료 청구소송 첫 기일에 K 배우가 불참했다는 사실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지만, 일부 기사에서는 ‘민사 소송은 당사자가 출석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설명하지 않은 채 ‘불참’에만 방점을 찍었습니다. 마치 ‘재판에도 참석하지 않을 정도로 불성실하거나 파렴치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당사자 참석이 필수가 아닌 민사재판에서는 법률대리인인 변호인이 있는 한 당사자가 법정에 오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변호인도 꼭 참석하라고 권하지는 않습니다. 갈등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에서 상대방과 법정에서 맞닥뜨려봤자 서로 기분만 상할 뿐만 아니라, 가끔 예상치 못한 욕설이나 난투전이 벌어져 변호인으로서 곤란해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명인 사건 재판을 보도할 때마다 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변호인 선임에 관한 이슈입니다. 형사사건의 피고인이나 민사사건의 원고, 피고가 몇 명의 변호사를 선임했고, 그 변호사의 출신과 이력, 성향이 어떤지가 낱낱이 밝혀집니다. 현재 검찰 조사를 받은 유튜버 구제역은 두 개의 법무법인에 소속된 아홉 명의 변호사를 선임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다고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매우 복잡한 법적인 논점이 있다거나, 분석해야 할 금융 자료가 방대하다거나 하는 기업범죄, 시세조종 같은 범죄에서는 사건을 이끌어가는 메인 변호사뿐만 아니라 서포트하는 변호사 인력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형사사건에서는, 직접 조사에 동석하고 재판에 참여하는 메인 변호사는 결국 한두 명입니다. 나머지 변호사들은 자료 리서치 등 보조적인 업무만 거들거나, 회의에 참석해 의견만 내거나, 아예 아무 업무도 하지 않고 다만 메인 변호사가 급한 일정으로 조사나 재판에 들어갈 수 없을 때 대리 출석을 하기 위해 이름만 일단 올려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변호사 수임료 또한 실제 업무를 주도하는 변호사의 숫자를 기준으로 계산됩니다. 예전에 배우 유아인의 마약 사건에 변호사가 8명 선임되어 있다는 것을 근거로 어느 커뮤니티에서 ‘전관 출신 변호사의 몸값은 최소 삼사천이므로 유아인은 변호사 비용으로 적어도 3억원가량 썼다는 것’이라고 분석한 것을 본 적 있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뜻입니다. 물론 대형 로펌에서는 리서치 등 보조업무를 하는 변호사들의 업무 시간까지 일일이 워크시트에 포함해 시간당 보수를 청구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 메인 변호사가 청구하는 보수와는 단위부터 다릅니다. 보통은 법무법인 하나와 사건을 약정하면서 담당 변호사를 정하고, 담당 변호사가 필요한 보조 인력을 모아 새로운 팀을 구성하거나 기존에 함께 일하던 팀을 가지고 선임계를 제출하고, 담당 변호사의 경력이나 직급을 기준으로 ‘착수금’이라고 부르는 기본 보수를 받고, 기본 보수에 정한 시간을 넘어가는 시간을 투입할 경우 추가 보수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사실 일반 형사사건에서 변호사의 수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말은 변호인단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그나마 법무법인이 하나만 있어서 내부적인 지휘체계가 정리된다면 편하겠지만, 두 개 이상의 법무법인이 함께 일하는 경우, 업무 분담부터 시작해서 보수 조건, 의뢰인과의 관계, 외부 홍보까지 어느 하나 긴장감 없이 넘어갈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누가 최종 의사결정을 할지를 두고 주도권 싸움을 벌일 때도 있고, 반대로 은근슬쩍 상대방에게 일을 떠넘기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변호사가 한 명만 있을 때보다 더 다양하고 풍부한 아이디어나 전략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좋겠지만, 그 아이디어가 항상 좋다는 보장은 없으니 이 또한 조심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기업범죄나 대규모 조직범죄, 재난 재해가 아닌 일반 사건에서는, 변호사 선임비를 넉넉히 쓸 거라면 그 돈을 여러 명의 변호사를 선임하기보다는 진짜 믿을 수 있는 한 명의 변호사를 선임하되 그 대신 오로지 자신의 사건에만 집중해 주도록 요구하는 방법도 효율을 극대화하기 좋습니다.

서아람 변호사
변호사의 사임에 관해서도 얘기해 보겠습니다. 기사를 보면 ‘열 명이 넘는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다 사임하고 두 명만 남았다’든지, ‘사건이 기소되자 변호인단을 대대적으로 갈아 치웠다’ 같은 문구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형사사건 의뢰인과 변호사가 사건위임계약을 할 때는, 물론 공판까지 함께 약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수사 단계와 공판 단계를 따로따로 계약합니다. 수사 단계에서 불송치나 무혐의 처분이 나오면 공판 단계는 진행하지 않아도 되고, 또 사건이 기소된다면 의뢰인으로서는 다른 변호사를 동원해 다른 전략을 써보고 싶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와는 별도로, 피의자에 대하여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구속영장 사전심문만을 도와줄 변호사를 따로 선임하기도 합니다. 다만 변호인 선임계에는 해당 변호사가 어느 단계를 수임했는지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외부에서 보기에는 변호인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약정한 단계가 끝난 변호사는 더는 사건에 관여할 필요가 없고 관여할 권한도 없으므로 사임하게 되는데,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사임계를 내지 않고 그대로 이름만 올려두면 사건 진행이나 결과에 관한 통지가 계속 오게 되는데, 의뢰인 중에는 이를 원치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유명 사건 재판 보도에 다 드러나지 않는, 변호사 업무의 내부적인 특성과 프로세스를 몇 개만 짚어 보았습니다.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이런 이야기를 좀 더 풀어보려고 합니다. 이 글로 인해 독자들이 재판 보도 기사를 읽을 때마다 ‘이건 왜 이러지?’하고 아리송하셨던 부분들이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매우 기쁘겠습니다.

서아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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