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재성]유럽의 안보 위기, 남 일 아니다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24. 7. 29.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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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우크라 전략, 유럽 운명 좌우할 것
냉전 후 서방-러 관계 정립 실패, 불안 자초
한국도 지속가능한 안보·외교전략 고민해야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직 사퇴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등장으로 미국 대선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 대선에서 표출되는 미국 외교 대전략의 극명한 대비는 세계 질서 전망과 직결된다. 미 대선을 지켜보면서 가장 긴장하고 있는 나라는 아마도 우크라이나일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하루 만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호언해 왔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러시아의 점령 영토를 인정하는 선에서 협상을 추구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부통령 후보인 J D 밴스 역시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 중단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불리한 전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트럼프 2기에 대비하여 러시아와 협상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보이기도 했다.

반면 해리스 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해 왔고 젤렌스키 대통령과도 여러 차례 만남을 가졌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국가 주권과 영토 보전을 핵심 규범으로 삼는 미국 주도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수호하는 교두보이며,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일치한다는 인식을 보여 왔다. 필요할 때까지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차기 미국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략은 유럽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전쟁을 치르고 있고, 서방 진영은 미국의 군사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하고 군사력을 앞세워 세력을 확장할 경우, 미국의 적극적 관여가 없다면 유럽 국가들은 속수무책일 것이다. 특히 러시아가 비핵국가인 유럽 국가들을 위협할 때 미국의 핵 억제력이 없다면 안보 위기는 극대화할 것이다.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 회원국들의 방위비 분담 관련 문제로 나토에서 탈퇴하거나 유럽에 대한 군사 공약, 특히 핵 확장 억제를 약화한다면 유럽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핵을 가진 영국과 프랑스의 핵무기에 의존하여 독자적인 지역 방위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위협 인식이 다르고, 러시아와의 관계 역시 다양하기 때문에 공통의 노선을 추구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핵무기 능력이 러시아에 맞설 수 있을지, 이들이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핵 확장 억제를 제공한다고 해서 이를 신뢰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유럽이 공통의 안보 전략을 취할 수 없다면, 양자 혹은 소다자 협력을 통해 군사력을 증강하거나 동맹을 형성하여 자신의 안보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각국, 특히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각자의 방위 능력을 향상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심지어 개별 핵무장을 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강대한 군사력에 맞서 개별 국가들의 방위 노력이 얼마나 효율적일지는 회의적이다.

유럽의 안보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와의 전략적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여 지속 가능한 안보 체제를 이루지 못한 탓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론과 원인론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안보 구조를 만들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은 확실하다. 1990년대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와 협상을 통해 유럽 전체의 안보 구조를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동유럽과 중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에 안보 위협을 느껴 나토에 가입했다. 러시아 역시 서방의 제안이 만족스럽지 못하여 안보 불안을 해소하지 못했고, 그 결과 냉전적 대립이 유지되었다고 믿고 있다. 많은 국가가 지난 30년을 탈냉전의 기간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러시아는 사실상 서방의 대러시아 적대 정책이 유지되었다고 보고 냉전은 종식된 적이 없다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한다.

세계의 안보 공간이 하나로 연결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반도와 아시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러 정상회담 전후로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 지원을 해왔고, 북한이 유럽의 행위자가 된 지 오래다. 한국 역시 서방 자유 진영의 일원으로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해오고 있다. 동맹의 논리가 작동한 것이지만, 세계 안보 질서를 둘러싸고 남북한 간 전략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 안보 질서와 아시아에 지대한 함의를 준다. 강대국 간 지정학 대립을 타협에 의해 해결하고 고통받는 약소국가들의 주권을 존중할 것인지, 아니면 주권과 영토의 규범을 무시하고 군사력에 기초한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을지가 결정될 것이다. 유럽 안보 체제를 만드는 데 실패한 결과가 파국에 이른 것처럼, 동아시아에서 지속 가능한 안보 질서를 이루지 못한다면 향후 유럽과 같은 고난을 겪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전략 경쟁 등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우리 나름의 외교 전략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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