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커플 ‘제도’서 ‘권리’로…2심 때 쟁점 전환, 그게 통했죠”

김나연 기자 2024. 7. 29.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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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부부 건보 피부양 자격’ 판결 이끈 변호사들
혐오와 싸우는 법조인 조숙현·김지림·박한희 변호사(왼쪽부터)가 25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며 밝게 웃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결혼식 한 사실·예금통장 등
‘실제 부부’ 증명 과정 어려워
1심선 제도 벽에 막혀 패소
2심 재판부 ‘평등권’ 물을 땐
“됐다”는 느낌에 방방 뛰어
이번엔 제도적 인정 경험을
성소수자에 안겨준 게 의미

“엄연히 존재하지만 외면당해온 그들이 이제는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고 싶었어요.”

지난 18일 김용민·소성욱씨 부부가 ‘동성부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기 전까지 성소수자들은 그들을 가로막은 법과 제도의 장벽에 맞설 용기를 갖기가 쉽지 않았다. 소씨를 대리한 조숙현(법무법인 원)·김지림(공익인권법재단 공감)·박한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그 장벽을 허물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3년5개월간의 소송 끝에 장벽에 작은 균열을 만들었다. 지난 25일 이들을 만났다.

동성커플에게 처음으로 제도적 권리를 안겨준 이번 소송 결과는 김조광수·김승환씨 부부의 동성혼 소송 ‘패소’ 경험이 시작점이었다. 법원의 거부에 성소수자들이 입은 상처는 컸다. 조 변호사는 총 8명이 참여한 대리인단은 “작은 것부터라도 인정받는 경험이 있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뭉쳤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동성혼보다 조금 낮은 수준의 개별 권리는 제도적으로 뚫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김 변호사는 “승리를 한 번이라도 안겨주자”는 취지로 대리인단에 합류했다. 25년 전 사법연수생 시절 호주제 폐지 소송에 동참한 이후 소수자 소송을 해온 조 변호사는 후배들 요청으로 단장을 맡았다.

변호인단은 ‘법률혼’ 관계와 ‘피부양자’ 관계가 다르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1심에서는 제도의 벽에 가로막혔다. 재판부는 소씨가 굳이 피부양자로 인정받지 않더라도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보완적 제도가 있다고 판단했다. 소씨 부부가 제도상 혼인을 한 관계는 아니지만 실제로는 부부라는 점을 증명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이성부부는 혼인신고만 하면 끝인데, 소씨 부부는 결혼식을 올린 사실부터 예금통장까지 입증해야 하는 게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심 재판부는 판단의 ‘키워드’부터 다르게 잡았다. 재판장은 첫 기일에 ‘평등권’을 콕 집어 물었다. 이들은 “‘됐다’ 싶어서 재판 끝나고 나와서 방방 뛰었다”고 했다. 권리에 초점을 맞추려는 소송 전략이 적중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재판부는 소씨에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자의적 차별에 해당한다”며 1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우려도 컸다. 박 변호사는 “(패소할 경우) 나쁜 선례를 만들게 될 수 있다는 부담을 느꼈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도 “(전향적인) 대법원 판결이 사회적으로 공격과 혐오 등 반작용을 촉발시키는 경우가 있다보니 판결이 위축될까 우려됐다”며 “전체적으로 사회가 보수화되고 있다는 점도 걱정을 더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소씨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평등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소송의 마침표를 찍었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소씨를 ‘동성결합 상대방’이라고 했는데 대법원이 ‘동성 동반자’라는 표현을 쓴 것도 주목할 지점이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이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가족 구성원을 인정한 것이고, 이들을 얼마나 열심히 보호해야 하는지 몇번이나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판결이 성소수자들에게 “제도적 인정에 대한 경험”을 안겨줬다고 평했다. 박 변호사는 선고 직후 소란스러웠던 법정을 회상했다. “그래, 남자끼리 잘 살아봐라!”라는 누군가의 호통에 성소수자들은 웃으며 “네, 잘 살게요”라고 답했다. “혐오에 직면하면 위축되잖아요. 이젠 이런 얘길 들어도 맞받아칠 수 있는 힘이 생긴 거예요.”

소수자들과 연대해 온 세 변호사는 소씨 부부의 ‘멘털 관리자’도 자처했다. 소송 과정에서 소씨 부부는 세상의 각종 혐오에 부딪혔다. 박 변호사는 “소씨와 같은 동네 친구로, 힘들어하면 언제든 가서 술을 사주며 위로를 건넸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 트랜스젠더 변호사로서 소수자 당사자이기도 한 박 변호사는 “나도 힘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했다.

이들은 “이제 첫발”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동성혼 대리인단에서 활동을 이어가며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왔는데, 국내에서도 이런 결론을 받아내는 것이 목표다. 조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이 성소수자들이 ‘배제’에서 조금 멀어지는 데 힘이 되겠지만, 그보다도 조금이나마 더 빨리 헌법적 판단을 받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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