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트럼프 겨냥 ‘전직 대통령 면책 금지’ 개헌 추진
‘보수 우위’ 대법원도 정조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저지른 범죄에 대한 면책특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29일(현지시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 종신직인 연방대법관의 임기 제한과 대법관에 대한 윤리 규정 도입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오는 11월 미 대선에 앞서 보수 우위 ‘대법원 때리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백악관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도 재직 중 저지른 범죄에 대해 법을 초월하거나 기소가 면제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헌법 개정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피소 사건과 관련해 재임 중 행위에 대한 면책을 거론하자 대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방대법원은 지난 1일 보수 성향 대법관 6명 찬성으로 전직 대통령의 재직 중 공식 행위에 대한 면책특권을 인정하고, 지난 2020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불복과 ‘1·6 의회 폭동’ 선동 등 혐의가 공식 행위인지 비공식 행위인지 판단은 하급심에 넘겼다. 이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 관련 수사 및 재판 일부가 중단되거나 대선 이후로 미뤄져, 민주당 일각에선 사법부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해줬다는 비판이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대법원 대법관의 임기를 18년으로 하는 안도 함께 내놨다. 현재 미국 연방대법관은 9명으로 탄핵 사유가 없다면 종신 임기가 보장되는데, 임기를 제한해 대통령이 2년 주기로 새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주요 입헌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대법관에게 종신직을 주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며 “임기 제한은 대법원 구성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변화하도록 보장하고, 대법관 지명 시기를 더 예측 가능하고 덜 자의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현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1기’ 때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이 임명돼 한 대통령 아래서 보수 6, 진보 3 구도로 재편됐는데, 같은 상황의 재발을 막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보수 우위 연방대법원은 여성의 낙태권(임신중지권)을 보장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고 고등교육 내 소수인종 우대 정책을 폐지하는 등 잇따라 보수적 판결을 내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대법관이 수령한 선물을 공개하고, 공개적인 정치 활동을 자제하며, 본인 또는 배우자 등의 이해 상충이 있는 사건의 경우 판결을 기피해야 한다는 등 내용을 의무화하는 윤리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앞서 보수 성향의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부유층 지인에게 공짜 호화 여행을 제공받은 의혹을, 새뮤얼 얼리토 주니어 대법관은 부인이 ‘1·6 의회 폭동’을 지지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서 “나는 우리 기관과 삼권분립을 매우 존중한다”면서도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정상적이지 않으며, 개인의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들을 포함해 법원의 결정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약화시킨다”며 개혁안 제안 취지를 설명했다. 1·6 의회 폭동,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 등을 직접 언급해 트럼프 전 대통령과 현 연방대법원을 겨냥하기도 했다. 그는 “세 가지 개혁안 모두 미국인 대다수는 물론이고 보수와 진보적인 헌법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미 언론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이같은 대법원 개혁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대법관 임기제나 전임 대통령 면책특권 제한은 개헌 사항인데, 하원 다수인 공화당이 찬성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dpa통신은 “그러나 이 개혁은 민주당에서 인기가 있으며, 11월5일 (대선)에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선거용 제안이란 취지로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텍사스 오스틴 린든 존슨 대통령 도서관에서 진행할 연설을 통해 이같은 대법원 개혁 필요성을 역설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4일 대국민 연설에서 대선 후보직 중도 하차를 선언하면서 남은 임기 동안 대법원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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