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살 할머니 생애 최초 직관 나서게 한 선수
창밖을 주시하거나 거리를 나돌지 않아도 엑스(옛 트위터)를 켜면 계절의 변화 정도는 알 수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 향방이 오리무중이다, 그런 호들갑이 한바닥이면 아직 춘분이 지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미국프로농구(NBA) 플레이오프 영상 클립이 쏟아지는 시기부터는 날이 슬슬 더워진다. 올림픽 뉴스가 하나둘 올라온다면 장마가 끝났다는 의미일 것이다. 백목련이나 능소화 개화 시기를 통해 계절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런 인간도 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계절과 무관하게 타임라인에 출몰하더니 급기야 장악해버린 이가 나타났다. 미국의 농구 선수 케이틀린 클라크(22)다.
프로 데뷔전을 210만 명이 지켜본 슈퍼루키
요즘 소셜미디어에는 클라크에 대한 찬사와 신앙 고백, 간증이 가득하다. 알고리즘 탓이겠으나, 찬찬히 살펴보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클라크가 속한 인디애나 피버의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경기를 보러 온 한 90살 할머니의 손팻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90살 평생에 첫 WNBA 경기임. 양로원에 있는 내 친구들도 다 클라크 이야기만 함.” 스크롤을 내리니 또 이런 글이 있다. “재미있는 사실: 클라크는 30피트(약 9m) 이상 3점슛 성공률이 스테픈 커리, 클레이 톰슨, 루카 돈치치보다 높다.” 정말? 첨부된 하이라이트 영상을 시청하다가 멍하니 ‘좋아요’를 누르고, 다음 영상을 찾아 헤맨다.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 출신의 클라크는 2024년이 프로 데뷔 시즌이지만(이제 반을 살짝 넘겼다), WNBA에 남긴 발자취는 이미 그 어느 선배보다 크고 선명하다. 긴말할 것 없이 숫자를 보자. 그가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인디애나 유니폼을 입는 장면은 평균 245만 명이 지켜봤다. 2023년 드래프트 시청자는 57만 명이었다. 이전 최고 기록도 60만 명(2004년), 네 배 격차다. 그의 유니폼은 남녀·종목 불문 역대 드래프트 선수 최다 판매량 신기록을 세웠고, <이에스피엔>(ESPN) 등으로 송출된 클라크의 데뷔전은 210만 명이 봤다. 전 시즌 결승 시리즈 평균 시청자 수(72만 명)보다 세 배 많다.
농구를 아는 미국인 중 클라크를 모르는 사람은 없고, 농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클라크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다. 이것은 조금 놀라운 일이다. 최근 WNBA 성장세가 괄목할 만하다고는 하나, 여전히 프리시즌 경기는 중계도 안 해주는 경우가 잦아 일반 관중의 스마트폰 소셜 라이브에 팬들이 몰려가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열악한 리그이기 때문이다. <포브스>는 이런 사정을 지적하며 “WNBA는 아직 클라크 효과를 누릴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꼬집기도 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클라크 효과는 강렬하다. 스스로 시장을 만들어내고, 광범위한 유입을 끌어낸다. 극소수 슈퍼스타의 능력이다.
대학 시절부터 프로를 능가한 인기
클라크가 전국적인 신드롬으로 부상한 것은 대학교 2학년 무렵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농구 천재인 클라크는 유수 대학의 장학금 제안을 뿌리치고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아이오와대학을 선택했다. 그는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지역구 아이돌 수준의 인기였다. 그러던 중 2학년 시즌 중반 2022년 2월 미시간대학 방문 경기에서 분수령을 맞는다. 한때 25점까지 뒤처지며 끌려가는 경기였는데 클라크가 4쿼터에만 3점슛 네 개 포함 25점을 뽑아내며(전체 46점) 코트 위에 불을 질렀고, 이 활약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번지면서 들불이 일었다.
이 경기 뒤 아이오와 관중 수는 4천 명에서 1만5천 명으로 뛰었고, 팀 성적과 클라크의 기량 모두 급상승했다. 클라크는 이때를 기점으로 대학 농구사를 송두리째 갈아엎는다. 수십 개 기록을 경신했고,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상은 전부 휩쓸었다. 역대 남녀대학농구 최다 득점(3951점) 기록을 세웠고, 최다 3점슛 기록도 새로 썼다.(2등은 커리) 3학년 때(2023년) 루이지애나주립대학과 벌인 ‘3월의 광란’(전미대학체육협회 농구 전국대회) 결승전은 1230만 명, 2024년 4학년 노스캐롤라이나대학과 한 내셔널 챔피언십 경기는 1890만 명이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거듭 말하지만, WNBA 결승전 시청자의 17~26배다.
마이클 조던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조던 이전의 NBA는 국제 마케팅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내수용 엔터테인먼트였다. 생중계되는 경기도 일부 인기팀에 한했다. 2024년 4월 이(e)스포츠 리그오브레전드 명예의 전당에 첫 번째로 헌액된 페이커(이상혁)를 연상해도 좋다. 이런 선수들은 스스로 상징성을 쟁취하면서 서사를 완성하고, 자신의 주머니뿐 아니라 업계 전체의 파이를 키운다. 이제 막 프로 생활을 시작한 클라크는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이미 언론과 전문가들은 호언장담하고 있다. 케이틀린 클라크만큼 여자 농구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한 선수는 없고, 이 변화는 이제 시작이라고.
무엇이 ‘위대한 클라크’를 빚어냈나. 첫째는 물론 농구 실력이다. 단순히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보는 이들의 뇌리에 각인될 만한 독창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쇼맨’ 자질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하프라인 근처에서 거침없이 쏘아 올리는 ‘로고샷’(장거리 3점슛). 그 대범함으로 사람들은 클라크를 기억한다. 둘째는 여성 스포츠를 둘러싼 시대적 진보다. 1970년대 대학에서 여성의 운동권을 보장하도록 한 연방법이 발효됐고, 1996년 여자프로리그가 창설됐다. 2021년부터는 대학 선수도 영리 활동이 가능해졌다. 대학부터 나이키가 후원한 여자 농구의 총아 클라크를 가능케 한 시대적 조건이다.
클라크가 불러일으킨 여자 농구의 부흥
혹자는 흑인 중심 리그에서 백인 클라크가 미디어와 자본의 특혜를 받은 덕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런 클라크조차 NBA 선수에 비하면 연봉이 1% 수준도 되지 않는다며 그가 이 불평등을 개선할 영웅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 모든 바람과 요청, 질시와 폄훼, 오지랖과 설레발, 기대와 선망은 클라크의 위대함을 정의하려는 세간의 시도처럼 보인다. 클라크는 여느 위인들이 그러했듯 정의되지 않으면서 위대함을 일궈나갈 것이다. 그는 이미 왕도에 진입했고, 정도(正道)는 다름 아닌 코트 위에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역사를 지켜보는 일뿐이다.
박강수 한겨레 기자 turner@hani.co.kr
*스포츠 인(人)사이드는 동서고금 스포츠 선수 관찰기로 4주마다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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