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하제마을 팽나무와 생태감수성

김기범 기자 2024. 7. 29.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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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 수라갯벌 인근 하제마을은 주민들이 모두 쫓겨나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다. 미군기지 탄약고와 가깝다는 이유로 660가구, 약 2000명의 주민이 강제 이주당하고, 주민들이 살던 집은 모두 철거되면서 마을은 텅 빈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매달 네번째 토요일만은 평소와 달리 활기찬 분위기가 된다. 수십, 수백명의 지역 주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마을에 남아 있는 600년 수령의 ‘팽나무’를 지키기 위해 모여들기 때문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경남 창원의 500년 된 팽나무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이 팽나무가 꿋꿋이 마을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군산시 보호수이자 전라북도 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덕분이었다. 이 팽나무는 시민 수천명의 서명에 힘입어 문화재가 됐고, 현재는 이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등재하기 위한 심사도 진행 중이다.

과거에는 수라갯벌과 하제마을을 지키고 싶은 주민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마음이 이 나무를 지키는 원동력과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오히려 이 나무의 존재 자체가 갯벌과 마을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이 더 상처 입지 않도록, 낙담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힘이 되고 있다. 갯벌과 마을을 사랑하는 이들은 현재도 매달 한 차례씩 하제마을에 모여 팽나무를 중심으로 ‘팽팽문화제’라는 이름의 행사를 연다. 평화를 기원하고, 갯벌을 보존하려는 취지다.

오랜 세월 살아온 나무들은 이 팽나무처럼 개발 명목의 훼손에 반대하고, 자연을 지키려는 이들의 구심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이런 나무들이 끝내 벌목되는 순간은 많은 이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기도 한다. 특히 크고 오래된 나무일수록 그만큼의 긴 세월을 품고 있기에 안타까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른바 ‘닭발 가로수’라고 불리는, 지나친 가지치기의 희생양이 되어 앙상하고 짧은 가지만 남은 가로수들을 볼 때 시민들이 느끼는 불편함과 착잡함 역시 개발의 희생양이 된 나무들을 볼 때의 슬픔과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최근 남산 곤돌라 건설 추진으로 벌목 위기에 놓였다면서 환경단체들이 금줄을 건 서울 남산의 100년 된 음나무도 마찬가지 사례다. 서울시가 해당 나무는 벌목 대상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남산 정상부에는 오래된 느티나무를 포함해 벌목 위기에 놓인 나무들이 있다. 곤돌라 경로상의 다른 나무들도 벌목을 포함, 다양한 악영향을 받을 위험이 높다.

곧 양양군의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얘기가 들려오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예정지에서도 아고산대 수종을 포함한 많은 수의 나무가 잘려나가게 될 것이다. 설악산 숲이 훼손되는 모습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거나 심지어 이권과 탐욕에 눈이 멀어 박수를 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숲의 나무들을 지구 행성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야 할 구성원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슬픔을 느낄 것이다. 그중에서도 생태 감수성이 높은 이들, 특히 어린이·청소년들 중에는 큰 충격을 받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지난 총선에서 치악산 케이블카를 공약했으며 인사 청문회에서 ‘케이블카도 넓은 의미의 생태관광’이라고 공언하는 ‘생태맹’이 환경부 장관에 취임하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설악산 훼손과 벌목의 현실화를 더욱 걱정하게 되는 이유다.

김기범 정책사회부 차장

김기범 정책사회부 차장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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