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의료, 의로움의 충돌과 덫의 현장
2024년 2월6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약 5개월이 지나고 보건복지부는 7월18일에 전공의 7648명(전체 1만3531명 중 56.5%)이 최종 사직처리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두 번의 발표 사이에 시민들이 목격한 것은 서로 다른 얼굴의 의로움의 충돌이었다. 정부 관계자의 단호한 목소리, 대한의사협회의 비장한 목소리, 의대교수의 절규하는 목소리, 전공의의 힘겨운 목소리 등 내용은 달랐지만 모두 의로운 일이라는 확신이 내비쳐졌다. 물론, 시민들이 그 나름의 절실함을 의로움의 충분조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그렇지만 정작 문제의 시발점인 정부와 복지부는 어느덧 그 의로움의 덫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진 듯하다. 소위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의 실행을 위한 첫 번째 단추였던 ‘의료인력 확충’을 집단저항에 굴하지 않고(?) 성공해내면서 역설적으로 그 정당성을 획득한 것으로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로 인해 파생된 의료문제들은 진료 정상화가 절실한 수련병원과 사직한 전공의들, 그리고 9월에 다시 지원할 전공의들에게 떠넘겨졌다. 우려스러운 건 그렇게 5개월간을 뜨겁게 달궜던 의료에 대한 모든 의로운 논쟁들이 현장에 남겨진 당사자들에게만 내던져진 채 프랑스 파리 올림픽 열기 속에 묻혀버리는 건 아닌지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서 정작 가장 취약했던 집단의 목소리가 제일 조용하게 묻혀 있었다. 그들은 바로 환자와 그의 가족들이다. 중증질환자들에게 진료공백과 집단휴진에 대한 예고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다. 그 어떤 의로운 변명으로도 불안함을 없앨 수 없다. 주변에서 그 예를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고령에 암을 진단받자마자 수술이 언제 가능할지부터 걱정하던 친척 어른, 피로의 원인이 혈액암임을 알게 된 후 당장 무균실에 입원이 가능한지부터 걱정하던 학생. 이들 모두 “왜 하필 이런 시기에 병에 걸려서”라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개월 동안 언젠가 해결될 날이 오기를 기다리던 환자들 역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었다. 지난 7월4일 92개 환자단체는 기자회견을 통해 일부 의과대학교수의 집단휴진 및 장기간에 걸친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정부와 의료계가 모두 ‘더 나은 의료’를 위한 의로운 행동이라며 대치했지만, 정작 이 모든 상황이 취약한 공공의료 및 상품화된 의료 현실에서 파생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는 곳이 외지고, 가진 돈이 적으면 결국 의료 사각지대에 머물 수밖에 없는 환자들은 이번 사태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상황이 이럴진대 이번 정부에서 왜 ‘공공의료’가 아닌 ‘필수의료’를 강조하며 이렇게 무리하게 정책을 시행한 것일까. 정부는 ‘필수의료’를 “긴급하게 제공되지 못하면 국민의 생명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의료서비스 분야”로 규정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환자단체의 지적처럼 의료의 상품화 내용은 가려져 있다. 즉, 필수의료라 할지라도 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환자에겐 그것은 ‘필수’가 될 수 없다. 이렇듯 필수의료란 공급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며, 공공의료란 수요의 관점에서 다가간 것이다. 애초에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란 시기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모든 것이 파국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전공의 사직서 처리 시한을 최종 통보하고, 이후 하반기 새로운 전공의 모집 공고를 추진하도록 지시하면서 어떻게 그리 당당할 수 있는 것일까. 심지어 의로움으로 무장한 듯한 그 비장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미국 의학전문기자 린 페이어는 한때 영국의 의학을 경험과 근거에 입각한 ‘경제적인 의학’으로, 프랑스의 의학을 합리적 사유에 입각한 ‘생각하는 의학’으로 비유했다. 그때마다 나는 과연 한국의 의학은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되돌아보면, 한국은 전 국민 의료보험을 실행하고, 의약분업을 단행하고, 국민건강증진법을 시행하고, 검진을 의무화하여 암 정복을 시도해왔다. 그리고 이제 막 정부 주도의 의대 정원 확대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한국 의학은 ‘정치적 의학’에 가깝다고 느꼈다. 모든 정책들이 반드시 달성해내야 하는 ‘의로운’ 것들이었지만, 언제나 ‘적’을 만들어냈다. 의학은 절대로 오직 ‘정치’의 주제이거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데 얼마나 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단 말인가.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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