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더 나은 과학 소통을 위해

윤부현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 2024. 7. 2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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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부현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있을까? 그래서인지 모든 ‘대중화’는 어렵다. 표현 자체에 함의돼 있듯이 대중적이지 않은 뭔가를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좋아하고 향유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합리적이지는 않더라도 나름의 역사적 혹은 사회문화적인 배경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냥 무시하거나 당위성을 통해 강요한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렇게 괜찮은 나를 왜 사랑하지 않느냐’고 항변하는 꼴이다. 상대의 마음이 동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섬세하게 접근해야 한다. 과학 대중화도 마찬가지다. 과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과학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과학이 다소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다. 어려서 가졌던 과학에 대한 로망은 가능성과 장벽의 양면으로 존재한다.

전문가적 식견에서 한 걸음 떨어져 대중의 눈과 마음으로 과학을 보고 느끼지 않으면 어떤 과학의 모습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잡을 수 없다. 그간 대중화의 이름으로 관성적으로 해 온 일들의 반복으로는 언감생심, 사랑받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가끔 과학 관련 칼럼도 쓰고 불러주시는 곳에는 감사한 마음으로 달려가 강연도 한다. 내가 과학 대중화를 시작한 이유는 과학이 악용되기보다 선용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과학 대중화’는 ‘과학 소통’이다. 좋은 소통은 양쪽 모두의 욕구를 충족하고, 상호 간의 오해를 풀면서 이해를 늘린다. 과학 소통도 필요한 과학적 사실을 정확히 전하며 이해를 높이는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과학 소통’의 중요성을 통감한 적이 있다. 코로나를 치료하려고 살균제를 먹고,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기지국에 불을 지르는 등 가짜과학의 폐해가 극심했었다. 보다 못한 과학자들이 직접 설명하러 나서기도 했지만,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다. 말을 해도 안 통하고, 보고 있자니 속이 타고…. 예언력만 있고 설득력은 빼앗겨서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산드라’의 심정이 이렇지 않았을까? 2020년 ‘네이처’지에 실린 ‘증거기반 소통을 위한 다섯 가지 규칙’이라는 논평은 과학 소통의 방법론을 적절하게 제시했다. 요약하자면 사실을 알려라, 증거는 균형 있게 제시하라, 불확실성도 공개하라, 증거의 질을 설명하라, 잘못된 정보를 예상하고 대비하라 등이다. 결국 과학의 목표는 사람들을 특정 결정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증거를 바탕으로 스스로 결정하도록 돕는 ‘소통을 설계’하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이 쉽게 떠올리는 것은 ‘쉬운 과학’이지만 성인 대중은 유아적인 쉬움을 선호하지 않는다. 삶의 연륜을 가진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과학적 주제는 오히려 심오한 쪽이다. 다소 어려운 내용이더라도 친근하게,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처럼 난해하기로 유명한 내용을 통해 우주가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를 느끼고 싶어 한다. 과학 대중화의 목적은 국민을 전문가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정수를 이해하고 즐기도록 하는 것이며 그게 ‘교양으로서의 과학’이다.


지금의 빅이슈는 단연코 ‘의대 증원’이다. ‘적성’에서 ‘점수’로, 그리고 이제는 ‘정원’으로 대학 선택의 기준이 옮겨가는 모양새다. 이공계는 이래저래 신경이 쓰인다. 잘한 일이든 못한 일이든, 세상은 앞 사람이 쌓은 것을 딛고 전진해 왔다. 과학 분야에서의 단절은 쉼표가 아니라 마침표다. 기초과학의 필요성을 소리 높여 외치기 전에 과학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과학 덕후’의 확대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과학에 대한 대중의 애정이 깊어질수록 과학의 저변 확대와 과학기술 환경개선은 선순환된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인들의 지지와 성원이 필요하다. 코로나와 같이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 어떤 말을 믿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순간들이 적잖았다. 우리는 앞으로도 또 다른 형태의 팬데믹을 맞이할 테지만, 과학을 소통하는 방식만큼은 그때보다 부쩍 성장해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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