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호정의 컬쳐 쇼크 & 조크] <184> 대한민국 수퍼히어로 김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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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에어컨이 고장나버려 속수무책 무더위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김민기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김민기의 노래는 들어서는 안 되는 노래로 지정됐었다.
그 와중에도 70년대 식 낡은 프레임을 고집하며 김민기 선생이 남긴 노래들을 비판하고 불편해하며 거부하는 이들도 여전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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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에어컨이 고장나버려 속수무책 무더위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김민기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한 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아침이슬의 한 구절) 그래 어쩌면 내게 필요한 시련이겠지. 이러다 가을 냄새가 느껴지면 늘 그랬듯 ‘가을편지’의 한 구절이 떠오르겠지.
김민기가 만든 노래에 처음 눈물을 흘렸던 순간은 내가 아주 어릴 때였다. 아마 미취학 아동 시절이었을 것이다. 마루에 걸터앉아 라디오에서 양희은이 청아한 목소리로 부른 ‘백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당시 우리 집 마당에도 개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노래 속 개 이야기에 몰입하다 눈물을 터뜨렸다. ‘어디 가는 거니 백구는 가는 길도 모르잖아(백구의 한 구절)’ 노래에 감동해 눈물이 터진 첫 경험이었고 지금도 그 노래는 나의 눈물 버튼이다.
김민기의 노래는 들어서는 안 되는 노래로 지정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며 사랑받아온 노래들 때문에 오랫동안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김민기는 자신이 만든 노래를 싫어한다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20대 초반의 미술학도 김민기가 겪었을 시련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만약 ‘그 노래들이 금지되지 않고 오해받지도 않고 그저 아름다운 노래로 사랑받을 수 있었다면, 그래서 기타를 놓지 않고 꾸준히 싱어 송 라이터의 삶을 자유로이 이어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멈출 수가 없다. 가능하다면 다른 멀티 유니버스로 가서 만나지 못한 무수한 명곡들을 만나고 싶다.
흔히 어르신들에게 쓰는 호칭인 ‘선생님’이 김민기 선생만큼 찰떡 같이 어울리는 경우가 드문 것 같다. 어촌과 농촌, 탄광을 떠돌며 공장노동자와 달동네 아이들을 가르쳤고 서울로 돌아와선 학전에서 지금의 K-컬쳐를 이끌고 있는 수많은 세계적인 스타들을 가르치고 성장시켰다. 그 와중에도 70년대 식 낡은 프레임을 고집하며 김민기 선생이 남긴 노래들을 비판하고 불편해하며 거부하는 이들도 여전히 보인다. 그런 이들에겐 어쩔 수 없이 연민을 느낀다. 김민기의 노래를 들으며 시원하게 울어보지도 못하는 삶은 얼마나 건조하고 슬픈 삶인가. 이제라도 김민기 선생이 남긴 노래들을 편견 없이 감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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