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 1년 통째 쉬나…빅5도, 지역 국립대도 지원 ‘0’

천호성 기자 2024. 7. 2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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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2024년 신입 전공의 모집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전국 수련병원이 사직 전공의(인턴·레지던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하반기 모집에 나섰지만, 대다수 병원엔 한 장의 지원서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 모집까지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으면 내년 신규 전문의 배출이 급감하게 된다.

29일 각 수련병원 설명을 종합하면, 서울 ‘빅5’(삼성서울·서울대·서울성모·서울아산·세브란스) 병원과 지역 거점 국립대병원 등 전국 수련병원의 하반기 전공의 모집 지원자는 이날까지 대부분 ‘0명’이다. 전국 수련병원은 지난 22일 전공의 7645명의 하반기 모집 공고를 내고 오는 31일까지 지원을 받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이번에 인턴 123명 등 전공의 521명 모집공고를 냈지만 이날까지 한명의 지원자도 없었다. 서울성모병원 등 8개 병원을 통합 모집하는 가톨릭중앙의료원과 세브란스병원 역시 각각 1017명, 714명을 뽑기로 했지만 이날까지 지원자가 없었다.

고려대 안암병원의 경우 소아청소년과에만 비수도권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 1명이 지원했다.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은 전공의 지원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지원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이번 모집에 지역·진료과목 제한을 없애면서 서울 대형병원의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 등에 지원이 쏠릴 거란 예상이 있었지만, 인기 과목조차 외면받는 모양새다.

비수도권 국립대병원도 비슷한 분위기다. 충남대·경북대병원은 각각 59명·32명을 모집하지만 지원자가 없었다. 26명을 모집하는 전남대병원, 외과 1명만 모집하는 부산대병원도 마찬가지다. 비수도권 국립대병원은 연락이 닿지 않는 전공의를 사직 처리하지 않은 채, 지난 상반기 모집 때의 결원 등만 모집하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거의 채워지지 않는 셈이다.

사직 전공의가 이번에 복귀하지 않으면 내년 전문의 취득이 불가능해지지만, 대다수 전공의는 올 한해를 통째로 쉬는 쪽을 택했다는 게 의료 현장 설명이다. 수도권 한 상급종합병원장은 한겨레에 “전공의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해 ‘단일대오’를 강조하는 와중에, 서울 대형병원 성형외과 등에 지원하는 전공의는 (전공의 사회에서) ‘매국노’로 비칠 것”이라며 “마감일까지도 지원자는 거의 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 국립대병원 교육·수련 담당 교수도 “정부 기대처럼 하반기 모집으로 전공의 집단행동의 결속이 깨지는 분위기가 아니다. 수련 부서나 각 진료과에 지원자들의 문의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내년 전문의 배출이 평소의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드는 ‘인력 공급 절벽’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필수의료 분야에선 진료과의 명맥이 끊길 거란 우려까지 나온다. 심장 질환과 폐암 관련 수술을 맡는 흉부외과가 대표적이다. 이날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는 전국 수련병원에서 복귀해 근무 중인 레지던트가 12명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부터 수련 예정이던 전공의 107명 가운데 11.2%에 불과하다. 가뜩이나 지원자가 줄어든 상황에서 내년 배출된 전문의가 한자릿수에 불과한 셈이다. 학회는 “의정 갈등과 전공의 사직 결과로 지역·필수의료에서 흉부외과 역할이 소멸되고 있다. 앞으로 지역·필수의료 시스템은 향후 작동 못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응급의학과·산부인과 등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온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관계자는 “향후 전문의 배출이 더욱 줄어들며 기존 응급의료기관 의사들에게 더욱 격무가 쏠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의대생들이 의사 국가시험(국시) 지원을 거부하면서 내년에 전문의 외에 신규 의사 배출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 26일 마감한 의사 국시 실기시험 접수자는 364명으로 지난해(3212명)의 11.3%에 불과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는 이날 입장문을 내어 “(올해 접수자는) 예년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치이지만 (여기엔) 전년도 시험 불합격자와 해외 의대 졸업자의 원서도 포함된 것”이라며 “본과 4학년 재학생 중 원서를 제출한 인원은 159명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 정부는 대형병원의 전문의 채용 등을 촉진해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을 서둘러 인력 공백에 대응할 계획이다. 그러나 내년 전문의 배출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병원들이 전문의를 충분히 확보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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