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스의 연설이 말해주는 것들 [뉴스룸에서]
조기원 | 국제부장
“나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말하고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작은 마을인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에서 자랐다. (…) 하지만 그곳은 워싱턴 미국 지배 계층에게 버림받고 잊힌 곳이었다.”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 미국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은 지난 17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러닝메이트 수락 연설에서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어대는 내용으로 연설 내용을 채웠다. 러스트벨트로도 분류되는 오하이오주 출신인 그는 빈곤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 벤처 사업가로 성공한 인물이다.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한 그는 이날 연설 동안 자신의 성장기 때 진행됐던 민주당 정책이 미국 노동자 계층의 삶을 파괴했다고 비난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 조 바이든이라는 이름의 정치인이 중국에 달콤한 무역 협정을 맺어 미국의 좋은 중산층 제조업 일자리를 더 많이 파괴했다”며 “그 과정에서 내가 사는 오하이오주나 옆 동네 펜실베이니아주, 미시간주 등 미국 전역의 작은 마을에서 일자리가 국외로 보내지고 우리 아이들이 전쟁터로 보내졌다”고 비난했다.
그는 2016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처음 대선에 출마했을 때만 해도 트럼프를 “히틀러”에 비유하며 비판했다가 최근 트럼프 지지자로 변신한 인물이다. 그의 트럼프 지지가 신념의 변화인지 처세술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백인 노동자층의 박탈감과 상실감이 이번 선거의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을 이전에 맹렬하게 공격했던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것도 이런 심리를 39살의 젊은 밴스를 이용해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 때 부통령 후보로 택했던 마이크 펜스의 수락 연설과 비교해보면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펜스는 2016년 7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한 수락 연설에서 “나는 기독교인이고 보수주의자이며 공화당원”이라고 간명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또한, 자신에게 일어난 일 중 “최고의 일은 아내를 만난 것” 그리고 “앞으로 어떤 직책을 맡더라도 가장 중요한 직책은 아버지”라고 말할 만큼 전통적 가치에 충실한 연설을 했다. 당시만 해도 돌출적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트럼프는 공화당 보수 주류라고 분류되는 펜스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해 약점을 보완하려 했지만, 트럼프는 이제 그런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선에서 당선되지 않는다면 극단적인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에 대한 금전적 압박 걱정은 한 숨 덜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당선되지 않더라도 백인 노동계층의 박탈감을 달래기 위한 미국의 보호주의 정책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에 맹렬한 반감을 표시하며 집권한 바이든 대통령도 재임 기간 보호주의 정책을 계속 추진해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5월 중국산 전기차의 관세를 현재의 25%에서 100%로 올리고 반도체와 태양광 전지의 관세도 50%로 높이는 등 중국산 제품에 대해 무더기 관세 인상을 발표했다. 심지어 중국산 주사기와 바늘까지도 관세를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북미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은 동맹국이나 우호국들에서도 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22년 12월 미국을 방문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 의원 등과 진행한 업무 오찬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상 보조금이 프랑스 기업에 극도로 해롭다고 비판한 바 있다.
고령 리스크로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에서 하차한 뒤 새 민주당 대선 후보로 자리매김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과거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고관세 정책을 비판하고 자신은 “보호주의적 민주당원”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부통령이 되고 나서는 “그들(중국)이 우리 지식재산권을 포함해 우리 제품을 훔쳤다. 그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하든 패배하든 미국 진영 정치와 보호주의 강화라는 흐름은 바꿀 수 없다. 11월 이후에도 엄혹한 현실이 우리 앞에 있을 것이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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