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의 내일을 여는 충청작가 '넥스트코드'
강철규·김동형·송지현·염인화·이정형·장동욱 작품 세계
차세대 현대미술을 이끌어갈 6명의 지역 청년작가 전시회가 열린다. 지난 1999년을 기점으로 25년간 152명의 청년작가를 발굴·지원해온 대전시립미술관은 오는 9월 29일까지 청년작가지원전 '넥스트코드'를 개최한다. 올해는 예년보다 지원 규모를 확대해 시립미술관 본관 전시와 평론가 매칭, 창작지원금 제공은 물론 갤러리아 타임월드와 협력해 지속적인 활동 기반을 약속했다. 대상 작가는 강철규, 김동형, 송지현, 염인화, 이정성, 장동욱이다. 이들은 '누구도 낙오하지 않을 항해에 대한 기록'이라는 공통 부제 아래 동시대 청년들이 마주한 삶을 공유하고 앞으로 그려나갈 미래를 고민했다. 윤의향 대전시립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와 창의적 역량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우리 지역 청년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위한 환경을 마련하고 지원할 수 있는 장을 지속해서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보면 보이는 비로소 보이는; 강철규, 이정성
강철규는 한남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줄곧 대전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상실과 애도, 불안 등의 서사를 통해 기억의 주체를 개인에서 풍경으로 옮겨간다. 그는 유년시절 경험한 억압과 공포의 정서를 화면 가득 채운다. 반인반수와 목이 뱀처럼 굽은 남자, 검은 구체와 얼굴 같은 기이하고 낯선 이미지의 연속이다. 신작 '호수의 제단'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서사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는 벌목이나 사냥 행위는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는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정성은 회화를 매개로 사회 구조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양가적 감정을 탐구한다. 특히 사회와 예술이 관계 맺는 방식, 사회적 관계 속에서 예술의 역할을 고민하고 동시대 불안과 균열을 일종의 에피소드처럼 연출하는 특징이 있다. 그는 인간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되 죄책감과 수치심 등의 내밀한 감정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사회적 공동체의 형성과 파괴의 과정 속에서 그 현장감을 집요하게 살려내 군중의 모순된 감정선을 건드린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군중 속의 사람'도 한 방향을 바라보는 자세로 운집한 수많은 인파를 조망하며 느껴지는 모호한 감정에 집중한다.
◇결국은 원점 아닌 원점; 김동형, 송지현
김동형은 설치부터 영상까지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자칫 비효율적이고 무의미하게 여겨질 수 있는 행위에 사회적 가치와 기능을 부여한다. 이 같은 과정 속에서 인간의 존재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이를테면 무거운 바위를 끊임 없이 산꼭대기에 올려놓아야 하는 시지프의 형벌을 떠올리고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을 발견하는 식이다. 결과에 도달하는 게 불가능할지라도 거듭되는 실패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작업을 통해 시지프와 본인을 동일시한다. 이러한 상실에서 기인하는 혼란과 불안은 다양한 오브제와 연출을 통해 시각화된다.
송지현은 단국대학교와 영국 RCA(Royal Colleage of Art)에서 도자를 공부했다. 본질과 재료에 대한 밀도 높은 탐구를 기반으로 독창적인 조형 언어와 서사를 담는다. 그는 여러 지역을 이동하며 문화적이거나 관습적인 다양성을 직접 피부로 접촉한 경험을 토대로 분류·기호 체계로 지배되는 사회 구조에 의문을 던진다. 사회적으로 범주화된 구조 안에 편입되지 못한 객체를 포착하기 위해 원초적인 소재로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철과 구리, 망간 등 단일 원소와 점토의 본질을 활용해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유기적 상태를 과장해 드러낸다.
◇소멸과 흔적으로 연결 짓는; 염인화, 장동욱
염인화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 상호연결되는 확장현실(XR) 기술을 활용해 이른바 '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을 창작한다. 기후 위기와 생태 문제 등 동시대 사회적 문제를 화두로 삼는다. 신작 '사우나 랩'은 대전 유성지역의 과학기술연구 자본과 온천시설을 재사용해 설립된 가상공간의 시민참여형 기후위기 연구소다. 과학기술 연구단지와 온천의 교차점에서 가능한 기후 행동을 나타낸 것이 흥미롭다. 염인화는 관람객의 인지능력과 심리·신체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한 역할 수행 방식을 탐구하며 상호수행성(inter-performativity)이 적용된 특징을 갖는다.
장동욱은 시간의 상흔이 남은 공간에 관심을 두고 잊혀지기를 기다리는 도시의 풍경과 사물을 그린다. 도시의 삶과 그곳에서 소멸하는 것, 누군가의 흔적에서 발견하는 상실감은 탈색되는 색채와 어렴풋한 이미지로 모호하고 담담하게 기록된다. 이번 전시에선 그가 직접 머물렀던 서해 인근 풍경, 대전과 인천의 일터 등을 선보인다. 장동욱은 유년기 모호한 기억과 교차하는 지점에 관심을 둔다. 오래 전 기억을 더듬듯 도시 이면에 남겨진 시간의 기록을 담담하게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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