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소는 죄가 없다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4. 7. 2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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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나온 장병이 박 훈련병 분향소를 찾고 있다. 신소영 기자

방혜린 | 군인권센터 국방감시팀장

지난 6월19일, 얼차려 가혹행위로 사망한 12사단 훈련병을 추모하고자 용산역 광장에 일일 분향소를 차렸다. 이날은 망자가 살아 있었다면 힘든 훈련을 끝마치고 가족과 함께 수료식을 했을 날이었다. 사단에서도 추모식을 하겠다고 했지만, 어느 부모가 ‘엎드려 절받기’ 같은 부대 행사에 참석할 수 있을까. 21세기 군대에서 아직도 얼차려로 죽는 일이 발생하냐는 시민들의 분노와 비통함도 컸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함께 분향소를 차리기로 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서 분향소는 신고 대상이 아니다. 같은 법 제15조에는 ‘관혼상제’에 관한 집회는 신고와 관련한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신고 없이 차려도 무방하다. 경찰이 와서 뭐라고 한다면 “경찰이 집시법도 몰라요?”라고 대꾸하면 된다. 그런데도 굳이 집회 신고를 한 까닭은, 혹시 모르는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주 조금이겠지만 유족이 위로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 오롯이 추모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다.

용산역 광장에 집회 신고를 하고 분향소를 차리면 될 것이라 쉽게 생각했다. 집회 신고를 하러 경찰서에 방문하니, 우선 쇼핑몰로부터 광장 사용에 대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안내했다. 용산역 광장은 명목상 국유지이지만, 용산역 건물을 함께 쓰고 있는 대형 쇼핑몰이 일종의 ‘유상 대여’ 한 공간이기도 하다. 국유지이면서 동시에 사유지의 성격이 있는 것이다.

집회신고서를 제출한 뒤 쇼핑몰에 방문했다. 자신을 보안팀장이라 소개한 사람은 신고 내용을 보더니 “분향소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같은 장소에서 불과 며칠 뒤 고 변희수 하사 추모문화제가 예정돼 있었고, 그건 별말 없었다고 설명하자 ‘추모문화제’와 ‘분향소’는 다르다고 받아쳤다. 분향소나 추모제나 다 똑같이 추모하고 애도하는 공간인데 도대체 무엇이 다르냐니까 명칭이 다르지 않냐, 분향소를 차리면 쇼핑몰 고객들에게 공간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단다. “입구와 설치 장소랑 적어도 50미터는 넘게 떨어져 있는 거 같은데요?” “여하튼, ‘남일당 사건’도 있고 해서 분향소는 좀 어렵습니다.”

기절할 노릇이었다. 용산 재개발의 상징과도 같은 자리에서 감히 용산참사를 예시로 드는 걸 참아야 하나 울화통이 치밀었지만, 기어코 쇼핑몰 쪽의 사용 허가를 받아냈다. 그러자 이번엔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분향소라는 명칭을 추모제 같은 것으로 바꾸면 안 되냐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분향소 문제도 있었고 해서요. 서울청에서 분향소라는 명칭은 안 된다고 합니다.” 이도 모자라, 천막도 안 된다고 했다. 모두 접수가 끝난 집회신고서에 기재된 내용이었다.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아 그래요? 19일은 낮 기온이 35도라는데, 땡볕에 천막 없이 분향소 차렸다가 전부 열사병으로 쓰러지면 책임지시나요? 이태원 언급하면서 분향소라는 말 쓰지 말라 한 것 알려도 되죠? 집시법상 관혼상제는 신고 의무 없는 거 아시죠. 금지할지는 알아서 하세요. 저도 더 얘기 안 할게요.”

우여곡절 끝에 분향소는 무사히 ‘분향소’라는 이름으로 차려졌다. 딱 하루 차린 분향소에 수천명의 시민이 방문했다. 멀리 지방에서 올라오신 훈련병의 유족들께서 직접 손님을 맞으며 위로를 나눴다. 500송이만 준비한 조화를 몇번이나 재주문할 만큼, 많은 분이 마음을 보태주셨다.

얼마 전 7월17일부터 19일까지, 3일에 걸쳐 채 상병 1주기 시민분향소가 청계광장에 설치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접 나서 해병대 예비역 연대와 분향소 설치 논의를 신속하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서울시와의 약속대로 기한 안에 철거했고, 청소까지 잘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둘을 비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비교되지 않는가. 분향소를 차려보니 알겠다. 분향소는 죄가 없다. 죄는 애도하는 마음을 구분 짓고자 하는 자들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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